종(鐘)은 인류 역사에 비교적 일찍 등장해 종교적 의식에 주로 사용돼 왔고 서양에서는 악기로도 발전해 금속 타악기로 분류되고 있다.종의 재질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이는 철기 시대 이전인 청동기 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금속이라 할 수 있다.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쉽게 합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연하게도 이 합금이 때릴 때 맑고 고운 소리를 내는 까닭에 선사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금속 타악기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시대의 종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 신라 시대는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종을 만들게 된 초창기에 속하지만, 주종 기술이나 종의 모양 및 소리에 있어서 오히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보다 앞선다고 평가 받고 있다.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는 봉덕사종(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은 서기 771년에 주조된 것으로, 아름답고 은은한 음색으로도 유명하지만 직경 2.23m, 높이 3.66m의 거대한 종으로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종으로는 으뜸이다.
유럽에서는 종을 악기로 사용하기 위해 일정한 음 높이를 갖는 소리를 내도록 종의 구조를 변형시켜왔다. 보통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고대 종처럼 원통형 위에 반구형 구조가 합쳐진 단순한 모양의 종을 때리면 금속 구조체의 여러 가지 진동 모드에 따라 여러 가지 주파수 성분이 검출되는데, 이 때 이 성분들은 보통 서로 화음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들을 때 멜로디 악기의 음처럼 들리지 않고 종소리 특유의 오묘한 맛을 내게 된다. 유럽 사람들은 이런 자연스러운 종의 음색을 바꾸기 위해 개구부를 넓히고 부위마다 두께를 다르게 해, 부분음이라고 부르는 주파수 성분들이 서로 화음을 이루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종의 소리는 마치 고정된 음 높이와 배음을 가진 멜로디 악기의 음처럼 들리게 되고, 여러 가지 다른 크기로 제작된 일련의 종 세트로 멜로디 연주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신라나 고려 시대의 범종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종보다는 진화한 구조이며 부분음의 분포가 불교의 심오한 맛을 풍기기에 적당하게 돼 있다. 서양 종을 우리 전통 사찰에서 울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다듬어진 부분음은 분명 아름답게 울리긴 하겠지만, 깊고 오묘한 느낌까지는 주지 못하리라.
성 굉 모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음향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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