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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성공회大 신영복 교수의 "신영복 함께 읽기"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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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성공회大 신영복 교수의 "신영복 함께 읽기" 강좌

입력
2003.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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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등 수많은 스테디셀러를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강조해왔던 성공회대 신영복(62·사회과학부) 교수는 올 1학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본인이 직접 쓴 저서들을 교재 삼아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강좌명으로 강의를 시작한 것.실용주의가 판치는 대학 강단에 교수 실명이 내걸린 강좌가 출발한 것 자체가 자본논리가 무성한 시대에 인간 관계를 무척 강조했던 신교수의 논리만큼이나 신선하다. 이 때문인지 수강생이 신입생 100명으로 제한됐지만 재학생은 물론 수강이 개방된 졸업생과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강의실은 초만원이다.

"'신영복 함께 읽기' 강좌를 개설하는 게 어떻겠냐"는 동료 교수들의 권유를 몇 차례 뿌리쳤던 신 교수가 이번 학기부터 강좌를 개설한 것은 대학 신입생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입시에 얽매어 있던 고교시절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신 교수는 "교과서의 저자한테 직접 배운다는 감동, 저자가 강의를 진행하면 책에 담지 못한 행간에 묻혀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스스로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런만큼 수강생들의 감동도 남달랐다. 이 강좌를 듣고 있는 박소연(19·여·신문방송학1)양은 "오랜 감옥 생활을 겪고도 오히려 남의 어두운 면까지 포용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강좌는 학문 종속성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담고 있다. 신 교수는 "대학 마다 있는 교환교수는 미국 등을 방문해 일방 통행식으로 지식을 수입한다"며 "우리 사회 인텔리의 재생산구조가 너무 종속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에세이 형식의 책을 교과서로 쓰는 게 대학강좌로 적당하냐에 대한 기우가 없지 않았던 게 사실. 그러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무려 20년을 감옥에서 보내며 빨치산, 북한 정치공작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사람들과 대화한 신교수만의 자산으로 그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오히려 신 교수는 "난해한 논리나 관념보다는 사례중심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내 앨범 속에 사진들을 보여주며, 내 사진만 쳐다보지 말고, 나와 비슷한 사진을 수강생들의 앨범에서 찾아보라고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학 강의의 본질은 일방적인 지식전달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대화하고, 동감하며 서로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신 교수의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서울 양천구 '더불어 숲' 사무실에서 매주 토요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같은 강의를 시작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비롯, 의사, 기자, 사업가, 대학생, 주부 등 인생경험도 풍부하고, 독서수준도 높은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리허설을 거친 덕분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

"논문은 6개월 전의 사상, 강의는 어제 저녁까지의 생각"이라는 신 교수는 책 읽기에도 열심이다. 강의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서적을 탐독하는 신 교수는 동양고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자본 중심의 근·현대사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지혜가 그곳에 많이 담겨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고전강독과 700∼800페이지 분량의 에세이 집 출간 계획도 세우고 있다. 신 교수는 "음보(音步)나 글을 읽는 호흡과 리듬까지 독자들 수준에 이를 때까지 퇴고를 거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 밖 얘기를 꺼내자 신 교수는 "우리 사회의 한계성이 시험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착잡해 했다.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 사회의 관행이 무너지는 과도기에 놓여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도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중압감이 일시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풀고,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는 해법을 그는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강의에서 젊은 세대와 함께 찾아 가고 있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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