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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최희준의 잊지못할 사람 - 작곡가 손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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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최희준의 잊지못할 사람 - 작곡가 손석우

입력
2003.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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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명동의 어느 다방. 서울법대 졸업생 최희준(67·한국문예진흥원 감사)은 작곡가 손석우(83)씨를 처음 만났다. 미8군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던 동료의 소개로 이루어진 자리다. 새로운 목소리를 찾고 있던 당시 40세의 손씨는 최희준에게 노래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최희준은 망설였다. 직업 가수가 된다는 건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58년 서울대 '장기놀이대회'에 법대 대표로 나가 '고엽' '스타더스트' 등 외국 노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가정교사보다 수입이 짭짤한 미8군 무대에서 가족들 몰래 냇 킹 콜 등의 노래를 부르고 있긴 했지만 조만간 자기 자리로 돌아갈 작정이었다.한번 낙방한 고시에 대한 미련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수가 될 만큼 노래를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컸다.

손씨는 자신 없어 하는 최희준에게 "처음에 음악을 모르는 건 가수로서 흉이 아니다. 하지만 노래를 계속 부르면서도 음악을 모른다면 그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겠지"라고 했다. 최희준이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을 만큼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다. 손씨에게 대번에 믿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음반을 한 번 내볼까?

얼마 뒤 손씨는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등 4곡을 가져다 주었다. "제목처럼 재미난 노래였어요. 냇 킹 콜이 부른다면 아마 이렇게 부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녹음을 했습니다." 본명인 성준 대신 쓰고 있던 희준이라는 예명에 喜準이라는 한자를 붙여준 것도 손씨였다. "잘 웃어서라고 하셨죠."

노래는 히트했고 가수 최희준은 대중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후 10년 동안 최희준은 '맨발의 청춘' '진고개 신사' '하숙생' '나는 곰이다' 등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시키다시피 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정신없이 가수를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손 선생님의 그 말과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가 히트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가수 최희준은 없었을 겁니다." 최희준도 미8군 무대에서 알게 된 한명숙을 손씨에게 소개해 '노란 샤쓰의 사나이'(61년)로 전국을 평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수 생활 45년 동안 무수한 사람을 만난 최희준이 손씨를 첫번째 인연으로 꼽는 이유다.

최희준에게 손씨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해 준 작곡가 이상이기도 하다. 한 때 블루 벨스라는 남성 보컬 그룹에서 활동했고 당시 주류였던 트로트의 처지고 구슬픈 멜로디대신 서양 멜로디와 리듬으로 누구나 즐겁게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자 했던 손씨는 미국 노래를 듣고 자란 신세대 최희준에게는 스승이자 형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손 선생님과는 국제호텔 '장글바'에서 유주용, 위키리, 박형준 등과 함께 정말 자주 어울렸어요. 술 한잔 하면서 음악과 인생 얘기를 나누곤 했죠." 그 때 손씨가 들려준 말 중 최희준의 가수 인생에 원칙이 된 것이 있다. "연예인은 매스컴을 따라 다녀서는 안된다. 매스컴이 관심을 가질 만한 뜻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최희준이 정상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스캔들 한번 없던 것이나 70년 가수분과위원장을 시작으로 올 초 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대중음악의 학문적 접근을 후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희준은 지금도 "무대에서 노래할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콘서트를 열고 더욱 확실해진 생각이다. 올 가을에도 지방 순회를 포함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에게 즐거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일러준 손씨를 초대해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를 다시 들려줄 작정이다. 평생의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은 그 길 뿐인 것 같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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