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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신뢰회복에 命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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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신뢰회복에 命 걸어야

입력
2003.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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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신뢰를 화두로 하여 열리는 것 같다. 신뢰정치, 신뢰경제, 윤리경영 등 신뢰가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콩 한 알을 열 사람이 나누어 먹으면 한 사람 몫이 얼마 안되어 실물 면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신뢰는 열 배 이상 커진다. 이 신뢰(Trust)를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 하여 노동 자본 등과 함께 생산의 한 요소로 보았다. 신용(credit)은 객관적 담보물을 매개로 형성되지만 신뢰는 상대의 성실성과 능력에 대한 주관적 합리적 기대에서 성립하며 따라서 신용보다 크고 동태적이며 근본적이다.오늘날 신뢰는 사회자본의 성격을 넘어 국가 혹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의 투명성과 수익능력이 신뢰를 높이고, 신뢰가 회사가치와 주식가격을 높인다. 기술이 중요하나,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기술은 별 의미가 없다.

유한킴벌리의 경우 보이는 자산가치는 1조원 정도지만, 신뢰자본이 또한 1조원 이상이어서 총 2조원 이상의 기업가치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총 주식 가치는 약 250조원 가량 인데 신뢰구축만으로 250조원을 추가로 올려 500조원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출 증가 3개년 계획 보다 신뢰구축 3개년 계획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정보기술(IT) 혁명 시대에 신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실물경제에서는 신뢰 없이도 실물 자체로 비즈니스가 성립하지만, 사이버 세계는 실물 없는 비즈니스 세계이므로 신뢰 없이는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늘날 e비즈니스는 신뢰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수년 전 신경제 붐 때 IT부문에 돈이 몰리는 '비합리적 들뜸'(irrational exuberance)으로 신뢰위기가 생겼다. 그리고 거품이 꺼지면서 '비합리적 불안'으로 신뢰상실이 일어났다. 신뢰의 두 측면, 즉 수익성에 대한 기대와 성실성에 대한 기대의 두 가지가 다 무너진 것이다. 여기에서 돈과 기술간의 사랑은 파탄에 빠지게 된다.

돈이 다시 IT와 기술주 부문으로 돌아가게 하는 길은 신기술의 생산성 증가와 회계의 투명성을 비롯한 성실성의 증대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IT시대에 신뢰 사이클(Trust Cycle)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신뢰 사이클의 하강기이며, 이 사이클의 상승기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IT시대 그리고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신뢰 사이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는 노무현 정부의 위기의 본질은 '신뢰의 위기'이다. 상황변화에 따른 정책의 변화는 좋으나 '설명책임'을 동반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되고, 설명이 '자기변명'이나 '책임전가'로 흐르면 설명의 신뢰를 잃게 된다.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면 정책의 신뢰에 따라 국내외 기업과 금융이 '신뢰의 기러기 떼'를 형성하여 신뢰 사이클에 따른 비즈니스의 활성화가 일어나게 된다. 지금 노무현 정부와 IT경제가 빨리 찾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신뢰 사이클이다.

구한말의 국채보상운동과 환란 때 금모으기 운동은 채무자 모럴의 전형을 보여 국제경제의 신뢰를 산 운동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채권자·투자자의 모럴이 또한 강조되는 시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외환위기 때 채무자 모럴만 강조하고, 철저히 채권자를 보호하여 결과적으로 신뢰의 위기를 불렀다.

나는 채무자 신뢰의 상징인 한국에 IMF나 세계은행(IBRD)이 채권자 신뢰회복의 상징으로 '국제금융기술훈련센터' 혹은 '국제사외이사 아카데미'를 설립할 것을 촉구한다. 먼저 한국 정부와 함께 국제사외이사 아카데미를 세워 국제금융기술훈련센터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뢰경제 시대의 상징적인 출발을 하자. 그러기 위해 먼저 노무현 정부가 신뢰 회복에 정치와 경제의 명을 걸어라.

김 영 호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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