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왕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누렸던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엔 대통령 비판을 전혀 할 수 없었다. 큰 논란이 된 사회적 문제의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 경우에도 언론은 대통령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픽션 형식을 통해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가볍게 꼬집어도 무지막지한 고문이 가해졌다. 이걸 잘 보여준 게 1981년에 일어난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이었다.대통령을 비판할 수 없었던 과거에 대해 보복하려는 걸까? 민주화된 이후 한국 언론의 대통령 비판은 '대통령 중독증'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이 증세가 가장 심한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의 지면들을 살펴보면 하다 못해 외부 기고자들의 칼럼도 대부분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다. 이 문제를 동아대 박형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인으로 조사된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의 대부분은 '대통령에 대한 발언'이다. 조선일보 뿐만이 아니라 모든 언론이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언론의 파워와 직결시키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은 사설과 칼럼들을 조사해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일종의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자원독점적 권력관―제왕적 대통령―대통령을 정치 중심으로 부각하는 미디어의 영향―대통령 과잉 의존의 사회 분위기―대통령에 영향을 미치는 공식 비공식 연줄망(network)의 자원 독점―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극한적 정쟁' 이런 악순환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박 교수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할 순 없다 하더라도, 그런 악순환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대통령 비판을 하지 말자는 얘기도 아니다. 좋은 비판들도 많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과잉'이라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 권력에 거는 기대의 과부하다. 이는 비판자건 지지자건 마찬가지다.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과잉 기대가 난무하는 한 대통령은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와 신문 구독 행태가 따로 놀고 있고 그게 모순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도 대통령의 실패에 일조할 것이다. 자기가 표를 던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그 대통령에 반대하는 여론 형성에 일조하면서 자신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켜 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자신의 목소리 크기만 생각하지 말고 한국 사회 전체를 살펴 볼 일이다.
말 많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만 해도 그렇다. 그건 '투표와 여론의 괴리', 그것도 엄청난 괴리에 대한 대통령의 충격을 말해주는 걸로 보아야 한다. 그걸 외면하고 대통령의 '말'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비판을 가하거나 '대통령다운' 연기를 해달라는 주문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대통령 비판의 타당성이 아니다. 그 이전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대통령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의제설정 자체가 잘못됐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큰 일이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고 말이다. 입으로는 자율과 분권과 탈권위를 외치면서도 누대에 걸친 '대통령 중독증'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오늘날 한국인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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