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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16> 든든한 후원자…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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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16> 든든한 후원자…아내

입력
2003.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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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 사람 이야기 좀 하겠다. 내가 아내(이효숙)를 처음 만난 것은 첫 직장인 해운공사에 입사할 무렵이었다. 양쪽 집안 어른의 소개로 만난 아내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내게 아주 편안한 느낌을 줬다.무슨 이야기를 하든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이던 아내에게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어디 한 곳 정 붙일 데 없이 외롭게 자라난 내게 넉넉한 마음씨를 지녔던 아내는 애인이자, 친구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나보다 네 살 어린 아내는 나와 성장 과정부터 달랐다. 화성 출신 촌놈으로 어렵게 살아온 나와는 다르게 대한제분 상무를 지냈던 장인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라났다. 형제도 많아 언제나 북적거리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그런 아내가 집안이나 학벌이나 직장이나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내게 왜 마음을 주었을까. 또 그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던 처가가 아내와 나의 결혼을 쉽게 허락한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다. 언젠가 집 사람은 "당신이 가진 것은 없어도 예의 바르고 똘똘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후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이 부부의 인연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만난 지 채 1년도 안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집사람은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축의금으로 간신히 마련한 서울 신사동 낡은 셋방에서 고모까지 모시고 신혼생활을 했는데, 추위 때문에 무척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나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잦은 이사였을 것이다. 방 한 칸짜리에서 두 칸짜리로, 다시 독채로. 10여 차례 넘게 이사를 다녔는데도 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이사를 도와준 적이 없다. 아내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고비마다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해운공사에서 JC 페니로, 다시 화승으로, 수 차례 직장을 옮겨 다닐 때에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언제나 내 판단을 믿어줬다.

만약 그 순간 아내가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한 판에 믿는 구석도 없이 회사를 때려치우면 안 된다"고 말렸다면, 오늘날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마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막 결혼한 젊은 주부에게 내가 하는 충고는 언제나 같다. "당신 남편을 믿어줘라. 그게 남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길이다. 그렇지 않고 자꾸 바가지만 긁으면 남편이 커나갈 길을 막을 수 있다."

정신없이 일에만 빠져 사는 바람에 그 동안 아내의 고마움을 잊고 지낸 것이 사실이다. 늦게나마 철이 들었는가 보다. 요즘은 틈틈이 골프장에 함께 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연애시절 감정이 되 살아나는 느낌도 즐기면서.

아내가 나와 살면서 가장 힘들던 시절로 꼽는 것은 내가 화승을 떠나 아무것도 모르고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이다. 당시 아내는 일손이 부족하자 사무실로 직접 나와 경리, 타이피스트, 운전기사 노릇까지 해냈다.

하지만 몸보다 더 힘든 것이 정신적인 압박감이다. 빠듯하게 시작한 사업이라 툭하면 자금이 모자라 쩔쩔 맸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자존심을 죽여 가면서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나 돈을 빌어왔다.

사업이 하도 풀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한번은 친구들과 함께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점쟁이가 하는 말에 나는 물론, 친구들도 놀랐다. "당신은 마누라 덕에 성공할꺼야." 결과적으로는 그 말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가 "당신 그때 정말 대단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내는 "단돈 10만원도 빌리지 못하는 당신 성격을 뻔히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앉아만 있어요. 직원들 월급 주는 월말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서 혼났죠"라고 비로소 당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변변한 자금 없이 사업을 시작한 탓이었을 것이다. 1년 만에 감나무에 연 걸리듯 빚만 늘어나 1억3,000만원에 이르렀다.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에 2,00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으니 월급쟁이 같으면 평생 갚지도 못할 빚을 1년 만에 진 셈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 시절에 있었던 고통의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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