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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오늘은 새만금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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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오늘은 새만금의 날

입력
2003.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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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시들어 없어져 버린 줄 알았던

샛맑은 그리움 한 자락

―김지하 '해남에서'

그리움은 길이다. 물막이 공사로 물길이 막히고 있는 거대한 개펄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고행길을 떠나 우리 속의 탐욕과 이기심을 돌아보게 했던 이 시대의 성자들이 길을 따라, 마음길을 따라 마침내 서울까지 왔다. 오늘 오후 2시, 시청 앞이다. 우리는 두 달이 넘는 기간, 삼보일배를 하면서 마음길을 열며 열며 거기까지 온 묵언의 성자들과 함께 생명의 길을 기원한다.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며 천천히, 비장하게, 낮에는 기어가고 밤에는 노숙한 성자들의 숭고한 길은 우리 마음길을 열고 드디어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국회를 열었다. 국회의원 150명, 과반수가 훨씬 넘는 의원들이 서명을 한 것이다. 새만금 문제를 풀기 위한 신정책구상단을 만들고 결론이 날 때까지, 지금 밤낮 없이 진행되고 있는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고.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삼보일배의 정신에 동참한 것이다.

'국회결의안'이 아닌 '정책제안서'인 이유가 눈물겹다. 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6월 임시국회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밤낮없이 진행되는 물막이 공사를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켜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물막이 공사가 끝나면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되는 1억2,000만평의 개펄에 물길이 막힌다. 당연히 맑은 물은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고여있는 물은 썩고, 개펄에 사는 생명들은 여름 땡볕에 말라죽는다. 바다의 자궁인 개펄이 거대한 생명의 무덤, 죽음의 땅이 되는 것이다. 개펄이 죽으면 바다는 멀쩡할까? 바다도 서서히 죽어간다.

서해바다 새만금은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 동강이 영월만의 문제였고 내린천이 인제만의 문제였는가. 생명, 평화, 인권, 환경의 문제는 시공을 초월하는 우리 전체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지역의 환경문제를 람사협약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소외된 지역의 문제라면 다른 식으로 풀어야 한다. 이번에 이부영 의원과 함께 정책제안서를 만드는데 앞장 선 김원웅 의원은 일요일 여의도에서 삼보일배에 동참하고 나서 이런 제안을 했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새만금 개펄을 간척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환경파괴일 뿐입니다. 이 사업이 원래 소외지역의 개발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니까 '소외지역 지원특별법'을 만들어 새만금 사업에 상응하는 예산을 전북지역의 합리적 발전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 국회의장 이만섭 의원은 이런 얘기를 한다. "결자해지 아닙니까? DJ정부에서 해결했어야 하는 문젭니다." 그렇지만 어쩔까? 공은 넘어 왔는데.

원래 2000년에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회 예결위에서 새만금 관련 예산이 삭감되었다. 그러자 농림부는 간척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국회의 감시를 피해갈 수 있는 기금으로 간척을 계속했다. 이른바 농지관리기금이다. 국민의 세금은 그렇게 눈먼 돈이 되어 환경파괴를 위해 쓰여지고 있었다. 당신의 가족이 4인이라면 한 가구 당 새만금 파괴를 위해 내야 하는 눈 먼 세금이 50만원인 셈이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던 노무현 대통령이 넓고 넓은 바닷가 새만금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민의의 전당 국회를 존중하겠다는 청와대가 모처럼 정파를 넘어 한 마음으로 서명한 과반수 국회의원의 정책제안서를 무시할 리 없다.

21세기 개혁의 중요한 축은 '친환경'이다. 개혁을 주장하는 참여정부가 "한걸음 내딛으며 전생 현생 제가 지은 죄를 참회하고, 온 몸을 낮춰 생명의 소리를 듣겠다"고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기어온 수행자들의 마음 앞에서 벽을 쌓을 리 없다고 믿고 싶다.

이 주 향 수원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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