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모(母)기업으로 SK사태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는 SK(주)가 그룹 해체라는 최악의 위기에도 불구, SK글로벌 법정관리 신청 결의, 석유판매 대금 일시 중단 등 채권단의 잇따른 파상공세에 버티기로 나섬에 따라 SK(주)의 행보의 속내에 재계와 금융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채권단이 글로벌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을 결행할 경우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것은 물론 수감중인 그룹 오너인 최태원 SK(주) 회장도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SK(주)의 대응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채권단은 "최 회장의 경영권 상실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SK(주)가 적극적인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는 것은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세력의 거부 때문인 것 같다"며 "SK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도 핑계를 대며 'SK글로벌이 잘못되면 채권단도 성치 않을 것'이라는 투의 협박성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채권단은 SK(주)의 경영지원부문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인 유정준 전무가 글로벌에 대한 석유공급 중단을 주도하는 등 역공을 폈다며 그를 SK내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의 대학(고려대) 후배로 고속승진한 유 전무가 글로벌 회생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 "채권단쪽에서 '유 전무가 최 회장에게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는 SK 흔들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뒤 "그가 최 회장의 경영복귀 여부보다는 등기이사로서 법적책임을 의식해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치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실 SK(주)의 버티기와 정면승부에는 기업 이익이라는 대의(大義)와 외국계 대주주 및 노조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또 채권단의 요구에 '백기 투항'할 경우 과도한 지원 의혹으로 자칫 시장 신뢰 추락과 동반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이에 따라 SK(주)는 "채권단이 최 회장 구속이라는 회사의 상처를 악용해 SK(주)에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요구를 강요하고 있다"는 논리로 오히려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
SK(주) 관계자는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영업이익이 1,500억원에 불과하고 매월 1조원 이상의 운영자금을 사용하는 회사 입장에서 글로벌로부터 받을 외상매출채권 1조원을 전액 출자전환으로 소진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대 주주인 소버린과 노조 등 이해 당사자들이 글로벌에 대한 지원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데다 이사회가 소송을 우려해 무리한 출자전환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 오너 체제를 감안할 때, 최 회장이나 그룹보다 회사와 주주를 우선하겠다는 SK(주)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기아차 사태 때처럼 SK가 채권단과 밀고당기는 지구전을 전개해 경제 전반의 피해를 우려한 정부를 끌어들여 정치적 타협을 유도하고 최 회장도 구하려는 고도의 전술을 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은 SK(주)와 채권단간의 불신이다. SK(주) 관계자는 "만약 채권단 요구대로 1조원을 출자전환해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갔다가 1년 후 정상화가 안 되면 SK(주)는 그 손실을 어떻게 버틸 수 있느냐"며 "채권단이 그때가서 청산쪽으로 방침을 바꿀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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