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세상, 옛 얘기로 잠시 머리나 식혀 보자. 17∼18년 전, 필자가 일선기자로 야당을 출입할 때 들었던 일이다. 이민우 총재가 장외의김영삼(YS) 김대중(DJ) 등 양 김씨 대리인으로 신민당을 '관리'하던 때다. 기자단의 간사인 후배기자가 당의 실질적 오너인 두 김씨 등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지금은 아니겠지만 당시엔 주로 명절 때 간단한 성의표시가 관행처럼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간사를 만난 YS 비서는 기자 수에 맞춰 일률적으로 성의를 표했다고 한다. DJ의 방식은 특이했다. 독특한 방법으로 계산한 액수를 간사기자에게 자신이 직접 전달하더라고 했다. 내역을 보니 종합 일간지 다르고, 경제지, 통신, 방송, 영자지 등에 따라 내용이 달랐다고 한다.
다음은 소석(素石) 이철승. 간사를 만난 소석은 불편한 심기부터 털어놓았다. "자네들은 쌍금탕(雙金湯) 기사만 부지런히 쓰지 않는가?(소석은 양 김씨를 쌍금(雙金)이라 불렀다.) 쌍 금 열 번 쓸 때 내 이름 한번이나 써 주나?, 우리 수익자 부담원칙대로 하세. 나는 쌍 금의 10분의 1이면 되지?" 소석은 불만을 이렇게 해학적으로 풀었다. 그러면서 양 김씨에게는 못 미쳤지만 작은 계보 수장으로선 상당한 성의를 표했다고 한다.
돈에 관한 한 YS는 대인형이다. 어장을 소유한 부친 덕에 평생 부족함이 없었던 외아들이다. 탄압받던 시기에도 어쩌다 몇 푼의 돈이 생기면 주머니에 담아두지를 못했다. 그래서 YS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주인'이란 말까지 생겼다. 그의 지론은 "돈은 써야 하고 이것이 고일 때 꼭 문제가 생긴다"였다.
DJ는 달랐다. 돈에 관한 한 치밀했고 권한위임이 없었다. 한 푼의 누수가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유세장 수행원 밥값도 후보 자신이 직접 계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랜 정치적 핍박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해는 됐지만 그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많다. 김상현은 DJ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그도 85년 2·12총선 후 DJ와 상당기간 결별해야 했다. 이유가 공천과정에서 생긴 돈에 얽힌 오해였음은 당시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새삼스레 옛일을 되새기는 까닭은 요즘 지도층의 돈에 얽힌 얘기에 덧붙이면 교훈이 될까 해서다. 한나라당 민주계 의원들이 YS를 위해 3,000만원을 모았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손명순 여사의 운전기사를 내보내고, 또 일부 직원의 월급을 체불할 정도로 상도동의 살림이 어려운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얘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얼마 전에는 YS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분이 20평이 채 안 되는 돼지 갈비 집을 열어 화제가 됐다. 그것도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구리에서다. 들리기로는 그 분은 요즘 장사보다는 서울 등지에서 찾아오는 전직 넥타이 부대들의 인생상담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긴다고 한다. 이들은 전직 경제수석의 돼지 갈비 집을 찾아 새로운 용기와 지혜를 배워간다는 것이다.
우울하게 하는 일도 있다. DJ정부의 금감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등의 단죄 모습은 딱하다. 하나같이 개혁의 전도사, 경제검찰을 자임하며 경제계를 호령하던 사람들이다. 두 아들에 이어 장남까지 처벌이 불가피한 모양이다. 돈과 자식문제에 너무 관대했던 DJ의 자업자득이 아닐까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주변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골자는 떳떳한 정치를 위해 한때 사업을 한 적이 있지만 이 과정에서 범법행위는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미흡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은 피했으면 한다. 가뜩이나 현 야당이 집권시절에 수천억원을 만진 전직 대통령은 "지금 가진 거라곤 29만원뿐"이라고 소도 웃을 소리를 하고 있지 않는가.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돈 문제로 노무현을 다그치는 데엔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자신의 표현대로 '백수'시절 그의 정치자금이 문제가 된다면 지금 돌팔매 안 맞을 사람이 정치권에 몇이나 되겠는가.
노 진 환 주필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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