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미공조 강화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대북정책 기조가 최근 다시 남북관계와 민족공조를 중시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노 대통령은 27일 "최소한 김대중 대통령이 열고 이어온 햇볕정책은 확고히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의 계승·발전은 원래 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이날 청중이 민주당 의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불과 2주일 전 미국에서 한 강경한 대북 발언을 상기하면 상당한 거리가 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취임 후에는 햇볕정책이라는 용어의 언급 자체를 자제해왔다.
그렇다면 당선자 시절 미국의 군사주의를 공개적으로 경계하다가 미국을 방문해서는 대북 불만과 대미 찬사를 쏟아냈던 노 대통령의 대북·대미관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까. 사실 노 대통령은 귀국 후 방미결과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자 방미 당시의 발언을 상황논리로 해명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도 "무력사용론으로 미국과 입씨름하거나 각 세울 일도 없어졌기 때문에 한미 동맹관계를 다져가는 것이 시급했다"고 밝혀 방미 발언이 '립서비스'였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에 앞서 18일의 전남대 강연서는 좀더 직설적으로 "미국에 갔는데 미국 듣기 좋은 소리를 해야지 자꾸 기분 나쁜 소리를 하고 다녀서는 안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의 대북·대미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8일 "대미관이나 대북정책, 한총련 등 사안별로 왔다갔다 해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면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는 의외성이 상시화한 것같다"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대북·대미관에 변화가 없다"면서 "발언내용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은 실용주의적 접근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명분과 원칙을 견지하되,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간혹 강약과 완급의 차이가 불가피하게 생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비판을 '국민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도 있다. 윤영관 외교장관은 27일 "반미, 친미 논란은 한국의 역사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열등의식이 작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발언의 잦은 변화는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도 마이너스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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