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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박기당의 유성인 가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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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 박기당의 유성인 가우스

입력
2003.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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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인(流星人) '가우수'가 지휘하는 수백 대의 비행접시가 미국 극동함대의 항공모함 '력신호'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그 까닭은 유성인(혹성의 사람들)들이 지구에서 만든 원자탄과 전자무기 등을 탈취, 지구를 공격하기 위해서다.유성인들은 원래 평화롭게 살았지만, 지구의 S국(냉전시대의 '소련')이 쏜 우주로켓에 '가레오'라는 유성이 피폭 당하고,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혹성인들이 죽고 말았다. 이를 보복하기 위해 유성인들은 힘을 모으고 '가우수'를 대장으로 한 지구 정벌대를 구성, 피 비린내 나는 스타워즈를 시작한다. 유성인 가우수는 지구정벌 야전사령부를 서울 외곽의 북한산 지하에 건설했다.

1965년 2월에 발행된 박기당(81·본명 박성근) 선생의 역작 '유성인 가우스'는 상, 하권 단 두 권으로 발행됐지만, 만화사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우선은 우주전쟁을 소재로 한 첫 만화 작품이었고, 이후 창작된 한국의 SF만화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지금의 흰머리 장년층 가운데에는, '유성인 가우수'라는 만화이름을 대면 금새 "아하, 그 안경 낀 가우수!"라며 무릎을 치는 사람이 많다.

스치고 지나가듯 우리 만화사의 한 부분을 장식한 2권 짜리 만화가 이렇듯 당시 청소년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 박기당 선생의 탁월한 창작 역량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만화에는 정통미술을 전공한 탄탄한 데생 실력에 바탕한 사실적 그림체와 음흉하게 보이지만 궁금증을 더하는 주인공의 캐릭터 이미지가 살아 있었고 거기에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복선(伏線)이 더해졌다. 말하자면, 실감나는 그림체와 잘 짜인 콘티로 말미암아 당대 최고급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만화 매체의 장점 가운데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무한한 이미지 표현력'이다. 광활한 은하계를 배경으로 한 우주전쟁이든 수백만명의 병사가 벌이는 전투 장면이든, 솜씨 좋은 만화가 한 사람의 펜 하나라면 너끈하게 장면묘사가 가능하다. 만약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실사(實寫)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려면 그 비용은 실로 천문학적 액수에 이른다. '스타워즈'나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많은 미국 SF영화의 원전도 만화다.

전성기 박 선생의 주종목은 사극(史劇) 장르였다. 역사 소재에 괴기, 공포 분위기가 감도는 스릴러물에서 많은 대표작을 창작했다. '유성인 가우수'는 마치 박기당 만화의 메인 스트림에서 곁가지로 불거진 서자(庶子) 같은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박 선생은 1922년 일본에서 태어나 오사카(大阪) 상공(商工)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조국에서 청년기를 맞은 그는 한때 극장 간판을 그리기도 했으나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딱지만화'(손바닥크기의 간이만화)를 그리면서 만화가의 길에 접어 들었다. 대표작으로는 '불가사리'(1959년), '파고다의 비밀'(1961년), '서유기'(1968년) 등이 있다. 1967년에는 만화가협회장에 피선, 만화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힘쓰기도 했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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