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효과고려대 신입생 신동찬(18·언론학부)씨는 1년 전 이맘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에 운집한 수십, 수백만 명의 거리 응원단과 함께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을 목청껏 외쳤던 당시의 열정과 감격은 팍팍한 고3 수험생 시절을 견디는 힘이 됐다. 신씨는 "수능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시청 앞에 나가 목청껏 한국팀을 응원했다"며 "아직도 눈 앞에 붉은 물결이 아른거리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월드컵 이후 1년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그는 월드컵 거리 응원 현장이었던 시청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 시위에도 참가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대선을 지켜보기도 했다. 참여의식이 자연스레 솟아났고 마음 한켠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애착과 자신감도 생겼다.
대학생이 된 신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한총련의 5·18 국립묘지 시위를 둘러싼 혼란 등 세상이 내 뜻과 달리 돌아가기도 하지만 지난해 6월 얻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의 미래를 지탱해줄 힘이 됐다"고 단언했다. 월드컵 개최 1주년이 되는 2003년 6월을 맞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지난해 월드컵이 끝나자 한국 사회는 '레드 콤플렉스'와 '모래알 개인주의'를 벗어나 밝고 당당한 'R세대'가 주도하는 단합과 희망의 시대로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각종 대립과 갈등은 1년 전 월드컵 개최의 기억을 희미한 '한여름 밤의 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익단체의 충돌, 대북·대미관계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이 계속되면서 월드컵이 남긴 긍정적 효과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응원단 '붉은 악마'의 회원인 손형오(26)씨는 한국민의 '냄비근성'을 아쉬워 한다. 그는 "프로축구 응원 열기가 급속히 달아올랐다 식어버린 것처럼 사회 전반에서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남긴 성과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역동성에 대한 경험', '자발적인 통합성', '자신감' 등으로 요약되는 월드컵의 에너지가 현재 한국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힘이 됐다는 것이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과)는 "여전한 청년 실업과 입시 스트레스, 경기 침체로 인해 당시의 역동성과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시민의 자발성을 통한 타인과의 연대의식을 경험한 우리의 저력은 촛불 시위, 반전운동 등으로 꽃피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만금 갯벌 살리기 3보1배에 참여하고 있는 녹색연합 김타균 정책실장도 "애초 4명으로 출발했던 3보1배 행렬이 이제는 1,000여 명을 넘어섰다"며 "아무런 동원 없이도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월드컵 이후 싹트고 있는 자발적인 시민 참여 정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교양학과)는 "시청앞 광장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산하며 국민적 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을 보고 느낀 경험을 이제는 수십년간 고착된 국민의 가치관 전반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경제적 효과
지난해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 등은 2002 한·일 월드컵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로 10조원 안팎을 예측하는 등 하나같이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과연 월드컵은 한국 경제에 그만한 과실을 안겨 주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평가는 이르다. 월드컵이 끝난 후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학술적 분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기업 등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효과가 당장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단기적 효과는 없었다는 점이다. 당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관광수입 7,000여 억원 등 모두 5조3,000억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국가 및 기업 이미지 제고 등 14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월드컵 전후로 일시적인 소비촉진은 있었을지 몰라도 국가 이미지 제고로 인한 수출 증대나 외국인 투자의 확대 등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져오는 지렛대는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월드컵으로 인한 대외 신인도 상승과 국가 및 기업 이미지 제고 등이 즉각 수출 증진 등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성격이 강한 만큼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월드컵 효과가 이라크 전쟁 등 올들어 발생한 외부 변수에 눌려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세계 시장에서 기업 브랜드 이미지 1%를 향상시키는데 1억 달러 정도가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월드컵 효과는 엄청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월드컵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약속된 선물'이라기 보다는 장기적인 후속 전략 마련 등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지적이다.
/박천호 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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