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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개그인생 20년](3) 복 많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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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개그인생 20년](3) 복 많은 여자

입력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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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나를 이기고 일어섰다. 그 사이 아이도 두 명이 됐고 좋은 집도 생겼다. 나에게 아이들은 너무 소중하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결혼하고 7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아이만 가지면 유산이 됐다. 첫 아이를 갖고도 유산기가 있어 계속 하혈을 했다. 친정 엄마는 매일 우셨다. 나도 울었다. 움직이면 아이가 떨어질까봐 누워서 소리없이 울었다. 그렇게 얻은 귀한 딸을 나는 낳은 지 사흘만에 친정 엄마에게 맡겼다. 출세를 위해 모질게도 아이를 외면했다. 젖은 퉁퉁 불었고, 씩씩하게 녹화를 끝내고 썰렁한 집에 돌아오면 이게 사는 건가 싶어 자꾸 눈물이 났다.식구들은 전부 내 스케줄에 맞춰 산다. 둘째 아이도 녹화 날을 피해서 낳았고, 동생 결혼식도 녹화 없는 날로 잡았다. 남편 생일, 결혼기념일 행사도 모두 녹화 없는 날로 미루거나 당겨서 한다. 내가 잠 자고 있으면 아이들과 남편은 발 뒤꿈치를 들고 다닌다. 아침밥을 거르는 나를 위해 남편은 사과 배 감 등 과일을 깎아서 차 안에 놔둔다.

반성하건대 나는 가족을 위해 한 게 별로 없다. 5학년, 3학년인 두 딸이 그렇게 원했는데도 학교 급식 당번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다. 아이들 학교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가본 게 전부다. 고작 "사랑해" 라고 말하며 으스러지게 안아주는 게 다인 엄마. 그래도 두 딸은 엄마가 좋다며 밤마다 서로 내 옆에서 자겠다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내 기분이 좀 나빠 보이면 팬티만 입고 "울라 울라" 짱구 춤을 춰주는 남편, 엄마 피곤하다고 계란말이 만들어 밥상을 차려주는 두 딸. 나는 과분할 정도로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산다. 고맙고 미안하다.

나는 인복이 많다. 특히 전유성 선배님의 사랑은 늘 나를 감동시킨다.

어느날 전화가 걸려왔다. "난데, 지금 지리산에서 걸어서 집에 왔다." "아니, 그 먼 길을 정말 걸어서 오셨어요? 왜요?" "감동을 주려고. 너 만나러 부산에서 비행기타고 1시간 반 만에 왔다는 거 하고 널 보러 15박16일을 걸어왔다는 거 하구 어느 게 더 감동적이냐? 너 감동 받았구나!" 맞다. 난 감동 받았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를 생각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좋은 선배님이시다. "여자들 루즈 그거 남자들이 다 빨아 먹잖니. 거기다가 간 나쁜 남자친구를 위해 간에 좋은 약을 섞고, 위장 나쁜 애인 있으면 위장약 섞어 팔면 대박일 텐데…." "야, 고속도로 통행권 뽑는 기계 있잖니. 그걸 대통령 얼굴로 만들어서 입에서 통행권이 혀 내밀 듯 쑥 나오며 '통행권 맞습니다, 맞고요. 뽑아가 주세요' 하면 재미있지 않겠냐?" 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선배님의 특별한 재능을 정말 배우고 싶다. 한 번은 "선배님, 너무 힘들어서 외국에 나가 충전 좀 하고 오고 싶어요" 했더니 "야, 니가 무슨 배터리냐? 연예인들 뻑 하면 충전하러 외국 간다더라. 욕심 내지 말고 쉬엄쉬엄 가라. 인생은 즐기면서 사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인기라는 동아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다 보면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럴 때 위로가 되는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나는 정말 복 많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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