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두고 가시오."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의 임기 만료 1주일을 앞둔 2001년 5월1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으로부터 검찰 인사안을 보고 받고 'OK' 사인을 내지 않았다. DJ는 평소 각 부처가 마련한 인사안에 대해 "장관이 잘 알아서 하라"며 거의 그대로 재가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이날의 유보 결정은 의외였다.
김 장관이 보고한 인사안에는 후임 검찰총장으로 신승남(愼承男) 대검 차장이 단독으로, 대검 차장으로 김경한(金慶漢) 법무차관, 이명재(李明載) 서울 고검장 등이 기재돼 있었다. 그리고 서울지검장, 검찰국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등 이른바 검찰 '빅 4'의 내정자들도 들어 있었다.
김 장관은 "그냥 두고 가라"는 말에 머쓱해져 자리에 일어서면서 "이 달 말에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반부패 포럼'이 열리는데 다녀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DJ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DJ가 재가해주지 않은 점은 부담이었지만, 해외 출장을 허락해 준 것은 김 장관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검찰의 라인업을 새로 짜는 상황에서 장관의 해외 출장을 허락하는 것은 일종의 유임 통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6일 후 김 장관은 안동수(安東洙) 변호사로 교체됐고 검찰총장은 원안대로 신승남으로 정해졌다. 어차피 신승남 총장을 택할 것이라면, DJ가 당초 검찰 인사안을 재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재가 유보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나는 절차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신 총장 체제가 최선이냐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DJ는 세세한 인사 내용을 간섭하지는 않지만 절차의 정당성이나 타당성에는 유난히 집착했다. 이런 DJ에게 김 장관이 검찰총장 뿐만 아니라 차장, 검찰의 '빅 4'까지 정해서 가져온 것은 일종의 월권이었다. 먼저 총장을 정하고 그 후 법무장관이 새 총장과 상의, 후속 인사안을 가져와야 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1년 1월 13일 개각 때 DJ의 신임이 두터웠던 홍순영(洪淳瑛) 외교부장관이 느닷없이 교체된 것도 절차 문제 때문이었다. 홍 장관은 교체되기 20여일 전인 1999년 12월 20일 '주일 대사 최상룡(崔相龍) 고려대 교수, 주러 대사 이재춘(李在春)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차관 반기문(潘基文) 주 오스트리아 대사'라는 내용의 인사안을 갖고 청와대로 올라갔다.
그날 주한 외국대사 3명의 신임장 제정식이 있었다. 신임장 제정식은 외국 대사 1명에 대해 별도로 진행되고 절차 사이에 10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다. 행사 전 홍 장관은 "공관장 인사가 늦어져 말들이 많습니다"라며 DJ에 인사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DJ는 4강 대사에 대한 나름의 구상을 갖고 있었다. 특히 97년 대선 국면에서 터진 외교부 공문변조 사건 때 반대편 입장을 취했던 이재춘 연구위원이 러시아 대사로 내정된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히 DJ는 재가를 미뤘다.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휴식 시간에 홍 장관이 "지금 발표하지 않으면 언론에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라며 다시 인사안을 들이 밀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의전 관계자의 얘기. "정말 아슬아슬했다. 홍 장관은 3 차례 인사안을 내밀었다. 신임장 제정이 다 끝난 뒤 홍 장관이 또 그러자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사인을 하고 그냥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홍 장관이 얼마 못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시 홍 장관의 교체 사유로 자신의 고교(청주고) 후배인 반 차관을 임명, 상피(相避)원칙을 어겼다는 점이 지적됐지만 숨겨진 이유는 절차와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DJ가 김정길 장관의 검찰 인사안을 재가하지 않고 나중에 그를 교체한 데는 절차상 하자가 적지 않게 작용했던 것이다.
당사자인 신승남 전 총장의 얘기. "나는 이미 총장으로 정해진 상태였다. 차장 후보자들은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김 장관이 총장 후보를 단수로, 차장 후보는 복수로 보고했던 것이다. 다만 김 장관의 실수는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장 외에 다른 자리의 내정자까지 보고한 것은 내가 다 짜놓았으니 사인만 하라는 격이었다."
하지만 절차적 문제가 재가 유보의 전부는 아니었다. 당시 여권의 핵심 인사들은 "DJ가 검찰 인사의 방향을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신 총장 체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증언이 적지 않다.
신광옥(辛光玉) 당시 민정수석의 증언. "대통령은 신승남 카드에 난색을 표명했다. 가급적 호남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신 총장이 대검 차장 시절 실권을 쥐었으면서도 안기부 자금의 총선유입, 정형근(鄭亨根) 한나라당 의원 수사 등에서 제대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고 보았다. 일을 벌이고 오히려 야당의 역공을 초래, 정치적 분란만 야기했다는 것이다. 비호남에서 대안을 찾아보라는 지시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두가 신 총장 체제를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바꾼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원안대로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통령도 고심 끝에 그를 총장으로 택했다."
DJ가 검찰 인사에 대한 재가를 보류하자 신승남과 동향인 목포 인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과 김홍일(金弘一) 의원, 홍업(弘業)씨 등이 나섰다. 이들은 DJ에 대안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임기 중반 이후에는 검찰의 인사권 보다는 수사권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 A씨의 설명. "그 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은 법무장관에 박상천(朴相千), 김태정(金泰政), 김정길 등 호남 출신들을 포진시켰다. 집권 초 법조 출신의 참모들이 '검찰은 인사권으로 제어해야 한다'고 조언한 내용을 그대로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태정 장관-박순용 총장'처럼 김정길 장관을 유임시키고 비호남 총장을 택하는 '호남 장관-비호남 총장'의 구도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접게 한 세력이 목포 인맥이었다."
실제 그 때 여권 핵심인사들은 수사권과 인사권에 대해 여기저기서 의견을 들었다. 검찰 출신 정치인은 물론이고 검찰을 잘 아는 언론인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검찰 기자를 7년간 했던 언론인 S씨의 증언. "당시 검찰 인사를 앞두고 박지원 수석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박 수석은 '검찰의 수사권과 인사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더라. 권력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집권 초에는 인사권의 힘이 더 강하고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수사권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해주었다. 박 수석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
이들 증언으로 미루어보면, 신 총장 체제의 지원자는 DJ라기 보다는 그 주변의 실세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DJ가 보다 나은 대안을 찾는데 골몰했다면 그의 아들과 측근들은 '자기 사람'에 더 집착했던 것이다. 물론 신 총장이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쳐 총장감으로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를 검찰 총수로 미는 세력들의 의도가 검찰 개혁, 쇄신의 명분이 아니라 영향력 행사 등 권력적 측면에 있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분란과 시비가 제기됐던 것이다.
검찰의 후속 인사에서도 정치권의 입김이 적지 않았다. 안동수 법무장관이 '충성 메모' 파문으로 경질되고 새로 최경원(崔慶元) 전 법무차관이 장관에 임명된 이후 이루어진 검찰 인사에서 대검 차장 자리가 논전의 대상이 됐다.
최 전 장관의 얘기. "나는 경북고 출신인 김경한 차관을 대검 차장으로 쓰라고 했다. 김정길 전 장관의 안도 그랬다고 하더라. 지역편중 논란을 누그러뜨려 총장의 위상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 총장은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을 고집했다. 정치권에서도 김각영을 선호했던 것 같다. 결과적인 얘기이지만, 신 총장은 김각영이 서울지검장 시절 정현준, 진승현 사건에 대한 서울지검의 수사가 미흡해 나중에 연쇄적인 게이트를 초래하는 바람에 불명예 퇴진해야 했다."
역대 정권처럼 DJ 정부도 검찰 개혁 보다는 검찰 장악에 더 비중을 두었다. 노무현 정부가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도 인권침해 개선 등 숱한 과제보다 인사에 집착한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DJ 정부 내내 검찰 인사는 믿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짜여졌다.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효율적이었지만 임기 말 칼날이 돼 돌아왔다. 역대 정권에서 되풀이되는 '청산'이 어김없이 재연됐고 그 과정에서 검찰도 상처를 입어야 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