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외무장관직 신설과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 추진을 골자로 하는 유럽연합(EU) 헌법 초안이 26일 공개됐다.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유럽의 미래에 관한 회의'는 이날 148쪽 분량의 '신 EU 헌법 초안 수정본 제 1부'를 발표하고, 이번 주말까지 초안 전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초안은 수정 작업을 거쳐 6월 20일 그리스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상정되고, 올해 말까지 최종 승인을 목표로 회원국 정부간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후 각국 의회의 승인 또는 국민 투표 과정을 거쳐 정식 발효된다.
EU 헌법은 느슨한 경제적 연합체 성격을 띤 EU의 각종 조약과 정책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함으로써 단일 국가와 같은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초안이 "EU는 독자적인 법적 인격체이다"라고 규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또 내년 10개국 추가 가입 이전에 정책 결정 경로를 단순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번 초안의 핵심은 대통령직과 외무장관직의 신설이다. 회원국이 6개월마다 의장국을 맡는 현재의 시스템이 정책의 일관성을 해치고 대표성이 약하다는 비판에 따라 각국 전현직 총리 중에서 2년 6개월 임기의 대통령과 외무장관(임기 미정)을 선출키로 했다. 하지만 핀란드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은 "소국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가 봉쇄당해 권익을 보호받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이미 대통령직 등을 차지하기 위한 외교전을 시작했다.
초안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 유럽 의회가 EU의 정부격인 집행위원회의 위원장을 선출해 대통령 등을 견제하도록 했다.
초안은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며, EU의 이익에 반하거나 효율성을 저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라크전 찬반 논쟁에서 보듯이 25개 회원국 전체가 의견을 통일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벌써부터 EU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권한을 요구하고 있지만, 초안은 "모든 정책 결정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고 맞서고 있다.
초안은 또 고용, 인권 등의 분야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권리 헌장'을 채택하도록 했다. EU는 그동안 수많은 관련 조약을 만들었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영국 등이 "우리 국민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해치는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논란이 예상된다.
초안 공개 직후 유럽 통합 지지자들은 연방(federal), 유럽 합중국(United Europe) 등의 용어가 빠진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반면 EU가 각각의 주권을 가진 국가들의 연합체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대파들은 "헌법의 강제성이 너무 커 주권이 훼손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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