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거 얼마예요?" 큰 소리로 물었지만 하나라도 더 사려고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 내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비행기 탑승 시간을 십여 분 남겨놓고 공항 면세점에 들른 길이었다.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명품 브랜드 화장품 하나를 집어 계산을 한 뒤 탑승 게이트로 뛰어갔다. 헐떡거리며 비행기에 오른 나는 손에 들린 화장품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아니, 내가 이걸 왜 샀지?'신용불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카드 빚과 관련한 범죄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든 현상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 무책임한 소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일까?
TV를 켜보자. 예쁘고 잘 생긴 스타들은 온갖 멋진 옷과 액세서리로 우리를 유혹한다. 매일 쏟아지는 광고들도 화장품과 향수, 옷과 구두, 목걸이와 반지, 가전제품과 가구, 하다 못해 이유식과 기저귀에까지 '럭셔리'한 이미지를 불어넣은 뒤 '당신의 능력을 보여달라'며 속삭이고 있다. 라디오, 신문, 잡지, 그 외 매체들도 TV와 똑같은 표정이다.
이런 우리가 정말 자율적 선택으로 소비욕구를 형성해 주체성 있게 소비를 하며 살고 있다 할 수 있을까? 개인은 다만 매스 미디어가 조작해 놓은 거대한 이미지의 허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소비를 통해 자율성을 부여 받고 민주주의를 실현해가며 살고 있다는 '소비 민주주의'의 착각과 함께. 그러나 소비를 통해 광고주가 매스미디어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를 사고 그것을 통해 내 품격을 높인다는 생각은 결국 조작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 날 내가 면세점에서 산 것은 화장품이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그 명품 브랜드의 '허상'일 뿐이었다. 일본 작가 나카무라 우사기는 한 인터뷰에서 "품질이 좋고 오래 쓸 수 있어서 명품을 산다는 건 웃기는 핑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 자신도 명품에 빠져 빚더미에 몰린 신세다.
이 거역할 수 없는 소비의 권력 구조,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머리 속 의식 구조를 주무르고 있는 듯 해 두렵다. 그것을 벗어나 내 머리 속 주체를 '나'로 만들어 가는 일이야말로 '소비'를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진짜 행복일 텐데.
임 지 선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