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극은 사실주의에 기반한 탁월한 심리묘사로 유명하다. 구(舊) 소련 시절에 예술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급속도로 발전했고, 그 중에서도 연극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가장 적합한 장르라고 특별 대우를 받았다. 1990년 수교 이후 많은 한국 학생들이 러시아로 연극을 배우러 떠난 데서 보듯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금도 러시아 연극의 전통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푸슈킨(1799∼1837)의 작품 벨킨 이야기 중 마지막인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를 연극화한 '못 말리는 귀족아가씨'가 78년의 역사를 지닌 국립 모스크바 예르몰로바 극장 프로덕션의 공연으로 30일부터 6월8일까지 서울 양재동 한전아츠풀센터 무대에 오른다.
러시아식으로 사는 지주 베레스토프와 영국식으로 생활을 바꾼 지주 무롬스키 가문 사이에는 각각 외아들 알렉세이와 외동딸 리자가 있다. 앙숙인 두 가문의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지만 밝은 분위기의 해피 엔딩으로 끝나 러시아적 정서를 드러낸다. 당시 유행한 감상주의 경향의 흐름을 거부한 푸슈킨의 재기가 곳곳에 번득인다.
원작자인 푸슈킨은 시인과 문학가로도 유명하지만 사실주의 극작가로도 이름을 떨쳐 근대 이후 러시아 연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재자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다룬 무소로브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원작도 그의 작품이다. 이외에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등의 작품은 지금도 유명하다.
1920년 소련 최초로 '공화국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은 여배우 예르몰로바(1853∼1928)의 이름을 딴 예르몰로바 극장은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인 A.P 체호프의 후계자인 전설적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1863∼1938)의 지도를 받은 극장으로 제자들이 지금도 그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은 웅변조의 대사 전달보다는 실생활의 자연스러운 동작과 대사를 추구한다.
주연인 안나 블라지미로브나 마르코바(리자)와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토카레프(알렉세이)는 연극과 TV 양쪽에서 활약 중이다. 연극은 러시아어로 진행되고, 한국어 자막이 들어간다. 연극 기간 중 러시아 화가인 발렌티나 토코례바와 세르게이 토코례프가 그린 고종황제와 안중근 서재필 등 한국 독립운동가의 초상화 전시회도 열린다. 극단 동임이 한·러 수교 13년 기념공연을 위해 의뢰한 50점의 초상화는 공연이 끝난 후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기증될 예정이다. 3만∼10만원 (02)595―2114
/홍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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