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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사주명리학 연구가 조용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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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사주명리학 연구가 조용헌 교수

입력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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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면 토정비결을 본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점장이한테 묻는다. 사주니 팔자니 궁합이니 하는 말은 일상용어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운세 사이트는 포르노와 함께 가장 번성하는 분야이다. 그런데도 점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특히 학자라는 사람이 내놓고 사주나 팔자를 믿는다고 하면 어리석은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다.그런 점에서 조용헌(42·원광대 불교대학원 교수)씨는 매우 특이하다. 그는 학자로서 사주를 믿고 있을 뿐 아니라 "사주 명리학의 부흥에 21세기 한국의 문화콘텐츠 사업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사주를 믿는가.

"믿는다. 내 사주에 학당(學堂)이 두 개인데, 이건 문필가나 학자로 대성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학자가 되었고 책을 내서 제법 알려졌다."

―그건 자기 암시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사주가 정해주는 경향성은 대체로 맞다. 학자가 될 사람이나 서비스 업종에 종사할 사람은 타고 난다."

―인간에게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인간의 운명은 90%가 정해져 있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골격은 정해져 있다."

―운명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걸 과연 인간이 알 수 있는가.

"운명을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A급 대가들은, 요즘 많이 죽었지만 80%까지도 맞춘다. 사주명리학을 하고 접신까지 한 사람들은 거의 정확하게 예언을 한다."

―최대치가 80%라면 그건 과학은 아니다.

"물론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실험을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과학과는 다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다. 과학조차도 오류가 미처 드러나지 않은 가설이다. 그런 점에서 사주나 역학을 체계있게 연구하면 맞출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설령 사주가 맞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믿어온 현상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상이 존재한다면 연구하는 것이 학문이다. 한의학도 한때는 황당한 학문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어 연구하고 있다. 풍수도 긴가민가 했으나 서울대 교수인 최창조씨가 설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하게 됐다. 사주 풍수 한의학을 강호 동양학 3대과목이라고 나는 부르는데 이 중 한의학이 학계에서 시민권을 얻었다면 풍수는 영주권을 얻은 정도이다. 사주명리학도 영주권, 시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우수한 사람들이 연구에 나서주었으면 한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판·검사, 의사가 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일렬로만 줄을 선다. 사람마다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사주 명리학은 다양한 가치체계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염세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30대까지는 되는대로 열심히 사는 것을 권장하고 마흔부터는 사주를 알고 운명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유한다. 자신의 경향과 맞는 일을 만나면 깊은 충만감을 느낀다. 이것은 출세나 부귀보다 중요한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한 데 따른 불안감이다. 사람이 1등을 지향하고 열심히 사는 데서 발전이 있다고도 하지만 때로는 이 같은 과욕에서 정신병과 정신분열이 온다."

―운명이 정해져있다면 성실이나 노력 선의 같은 인간사회를 지탱해온 가치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첫째 계율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계율이란 종교가 규정한 어떤 규칙이 아니라 나쁜 습관을 바꾸려는 자기만의 계율을 말한다. 자신의 나쁜 습관은 바로 자신의 경향성에서 찾을 수 있다. 또 좋은 스승을 만나서 지도 받으면 바꿀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죽었다 살아나는 법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기독교에서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깊은 상징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전제왕조가 신민들을 길들이기 위해 만든, 지배자의 논리 아닌가.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풍수나 사주 명리학은 오히려 혁명을 위해 더 많이 활용됐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종놈도 군왕지지(君王之地)에 묘를 쓰면 왕이 될 수 있고 노비도 왕이 될 사주를 타고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혁명의 논리였다. '정감록'은 요새 말로 치면 조선시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지배체제를 뒤엎을 수 있다는 사고를 하도록 만든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차별받던 서북인들이 조선 후기 들어와 사주와 풍수, 한의학을 많이 연구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피난 나온 서북사람들이 영도다리 밑에서 먹고 살기 위해 점을 봐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사주명리학 상업화의 효시이다. 요즘은 너무 돈벌이가 되다보니 사주명리학이 진창에 빠졌다."

―당신도 책에서 복채가 두둑해야 바른 점괘가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농담으로 쓴 것이다. 원래 사주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원광대)을 전공했는데 어쩌다 사주 연구에 접어들었나.

"내가 80학번인데, 그 무렵 대학생치고 사회과학서적의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사회과학 서적이 읽히지 않았다.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살았는데 산을 다니다보니 절을 다니게 됐고 절에서 스님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한의학, 풍수, 사주를 접하게 됐다. 그런데 내 사주를 맞추는데 신기하게 맞더라. 그 다음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됐다. 나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것이 바로 인간의 정체성과 운명에 관한 거부할 수 없는 질문 아닌가. 불로장생에도 관심이 많아 도교의 양생술도 공부했다. 원래 사주명리학은 도교의 방사(方士=도사)들이 오래 살기 위해 자연의 흐름에 인간을 순응시키는 방법을 찾자는 수련체계였다. 밤과 낮이 음양이 되었고, 사계절이 오행이 되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정 가운데에 자연의 중심이 되는 흙(土)을 넣은 것이다. 그래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사주 풍수 한의학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잡과라는 과거를 두었다. 이처럼 어렵던 학문이 점차 대중화하면서 민간에 자리잡은 것이 조선 후기 이후이다. 86년쯤인가, 친구스님과 와선을 하고 있는데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야말로 벼락치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다음부터는 바위산을 가면 발 뒷꿈치부터 정수리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고 온몸이 가뿐해진다.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

―벼락치는 경험을 하고 얻은 것이 겨우 건강인가.

"2000년에 키르키스탄의 천산을 갔는데 수도 비슈케시의 카페에서 대만 여자를 만났다. 구루라고 했다. 이 여자가 하는 말이 내가 네번째 차크라인 에고가 열리지 않아서 영통이 없다고 하더라."

―하하하, 신문에 소개하긴 좀 황당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미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속에 한국의 상상력이 있다. 그런데 그걸 미신이라고 때려잡으니까 상상력도 함께 죽는다. 물론 나는 미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정신세계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바위산에서 명상을 하면 꿈을 꾸는데, 바위는 신령스런 땅의 에너지가 올라오는 곳이라서 뇌의 어느 부위를 두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바위산이 있다는 세도나에 갔을 때이다. 벨락이라는 바위산에 가면 독수리의 영혼이 있어서 독수리의 계시를 볼 수 있다고 미국인들이 그러더라. 그곳에서 1시간 명상을 하고 왔는데 꿈에 10m가 넘는 인디언여자가 나타났다. 아주 조그만 내가 그 여자한테 매달려 젖을 빨아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에게는 독수리로 나타나는 산신령이 한국인인 내게는 여성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냥 꿈이라도 해도 좋고,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상상력이라고만 해도 미신으로만 때려잡기는 아깝지 않은가. 우리가 21세기를 문화콘텐츠의 세기라고 하는데, 우리만 갖고 있는 독특한 상상력이 아니면 세계 시장에서 승부할 수 없다. 나는 사주명리학과 풍수 등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애니메이션과 영화, 소설로 살려내야 할 상상력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시야는 이미 너무 미국화해있다. 가령 우리 전통 가운데는 무속이 가장 연구가 많이 됐다. 왜 그런 줄 아는가. 외국인들이 무속이 아름답다고 하니까 우리도 뒤늦게 따라간 것이다. 탱화도 외국인들이 아름답다니까 연구가 된다. 반면 사주 명리학은 한문도 알아야 하고 음양오행설에 대한 복잡한 철학을 공부해야 하기에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람이면 점을 한번은 봤을텐데 이 현상을 무시할 것인가. 현상이 있다면 그 이유를 캐야 하는 것이 학문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SK최태원 회장 구속 풍수탓?

최근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구속과 관련, 풍수가 다시 세간의 화제로 등장했다. 최 회장의 선대인 최종현씨가 풍수연구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를 지원했다는데 착안, 최 교수가 최종현씨의 묘소자리를 잡아주었는데 그 자리가 잘못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서 27일 기자와 통화한 최창조씨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최종현씨가 연구소 운영비를 대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한국학을 지원하기 위한 뜻이었을 뿐 그 분 자체가 나와 마찬가지로 술법 풍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사는 집도 유목민의 텐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은 분이었으며 소신대로 화장을 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풍수는 지리학과 다르고 인간과 지리의 조화로운 관계를 찾는 학문이다. 흔히들 터가 좋다 나쁘다고 하는데 풍수 사상에 따르면 좋은 터, 나쁜 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터, 맞지 않는 터가 있을 뿐인데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풍수를 오해하고 오해시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 교수는 "교수들과 산에 다녀보면 사회과학 교수들은 대체로 산 정상이 시원하다고 하고 인문학 교수들은 산 중턱을 아늑하다고 좋아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좋아하는 곳이 다르므로 그 사람에게 맞는 자리를 정하는 명당이란 그 사람을 알아야 제대로 정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던 지관한테 명당터를 정해달라는 술법 풍수가 만연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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