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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지식]<13> 영축산의 연꽃 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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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지식]<13> 영축산의 연꽃 경봉

입력
2003.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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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바탕 멋 있게 잘 해 보거라. 멋있게 살려면 생의 회계(설계)를 잘해야 한다. 근심걱정만 하고 살려면 사바세계에 나온 의미가 없으니 좀 껄끄러운 일이 있더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살아라. 살다가 언제 땅 밑으로 들어가는가, 그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 육십이라고 할 때 사십을 산 사람은 이제 이십년이 남았구나, 삼십을 산 사람은 이제 삼십년이 남았구나, 이렇게 회계를 해라. 설마 칠,팔십 세까지 안 살겠나 하지만 '설마 내가 죽겠나' 하는 생각이 사람을 죽인다."불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이처럼 쉬운 법문은 처음이었다. 지혜의 불꽃이 반짝이는 경봉의 법문은 늘 이랬다. 반야심경의 근간인 공(空)의 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법문이다. 공의 사상은 궁극적으로 아무런 걸림 없이 꿈과 희망, 포부와 기대를 갖고 살라고 가르친다. 삼라만상의 실체는 원래 텅 빈(空) 것이어서 인연에 따라 잠시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공은 허무한 것이 아니다. 현상계의 모든 것은 비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얼마든지 그 내용을 바꿔갈 수 있다. 공의 사상은 무엇이든 되고자 한다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경봉원광(鏡峰圓光·1892∼1982)은 자기 목소리가 뚜렷했다. 동시대의 많은 선승들이 역대 중국의 조사나 신라이래 저명한 선사들의 법문과 게송을 주로 차용한데 비해 경봉은 창조적인 육성을 들려주었다. 민족정서에 토대를 둔 그의 법문은 우리네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연히 울림이 컸다.

"진리는 자기의 삶을 찾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삶의 문제를 생각해봐라. 잘 입고 잘 먹고 지위가 높은 것이 잘 사는 일인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사는 목적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을 합네 하고 바쁘다고 하지만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일이 있겠는가." 경봉은 일상의 나날이 진리의 길이자 도임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사람들은 일상사를 시시한 것으로 여긴다. 깨달음의 세계와 굳이 구별한다. 그러한 대립의 세계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분별의 입장에 서서 일상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인식의 오류다.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그러나 일상사의 의미가 변한다. 고해(苦海)와 화택(火宅)으로 표현되는 생사의 현장이 과거와 달리 극락세계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깨달은 사람이 머물 곳은 현실 말고 어디에 있겠는가.

"바보가 되어라. 사람노릇 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서 참사람이 나온다. " 화두가 들리지 않아 고뇌하던 납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경봉은 이렇게 격려했다. 지식과 상식, 알음알이를 털어내라는 가르침이다. 망상의 원인은 바로 그런데 있다. 티끌 한 점 없는 백지의 마음이 수행자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①나는 누구인가, 즉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은 누구인가 ②뚜렷이 밝고 신령한 이 마음자리가 어디에 있다가 부모의 몸 속으로 들어갔나 ③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④죽는 날은 언제인가. 경봉이 정의한 인생의 4대 의혹이다. 사실 누구나 한번쯤 품어 봄 직한 문제들이다. 다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경봉은 이 같은 의단(疑團·의혹덩어리)을 풀기 위해 가시밭길을 헤쳐온 것이다. 수행의 최대의 적은 수마(睡魔)와 망상이다. 오늘날의 시간 개념으로 부처가 수행자에게 허락한 수면은 하루 4시간 정도였다. 수마가 침범할 때 마다 경봉은 바늘로 허벅지를 찔렀다. 그래도 안되면 기둥이나 벽에 이마를 짓 찧었다. 망상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산에 올라 목놓아 통곡했다.

경허는 드디어 세존의 밀어(密語)를 들었다. 그리고 여러 선지식과 서신을 통해 금강석처럼 견고한 반야의 경계를 확인했다. 만공은 답서를 보내지 않았다. 경봉은 우정 서울로 올라와 선학원으로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그 막중한 일을 어찌 서신으로 답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말씀을 해주시지요."

"스님의 그 경지를 잘 깨달아 살피시오."

경봉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공의 팔을 엄지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눌렀다. 만공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개안의 경지를 인정하는 미소였다.

제자 명정(明正)스님이 편역한 '삼소굴소식(三笑窟消息)'은 근세한국고승서간집으로 경봉 자신이 주고 받은 편지는 물론 경허 만공 성철 등 당대의 선지식과 명사 177명의 편지 247통을 수록하고 있다(삼소굴은 경봉이 머물던 토굴 이름이다). 서신은 문법에 구애 받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주고 받은 것이지만 수행의 탁마, 기연(機緣)의 토로, 후학제접 등 절집의 내밀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서신에는 깨달음의 경지가 실린 한시들이 첨가됐다. 그래서 '삼소굴소식'은 선서간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또 한말의 언론인 장지연(張志淵)과 경봉의 교우도 눈길을 끈다. 장지연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써 일제의 만행을 규탄한 우국지사였다. 경봉은 10대 후반부터 60여년 동안 거의 매일 일기를 써 왔다. 일기집 '삼소굴일지'와 서간집 '삼소굴소식'은 20세기 한국불교사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한암과 경봉의 교우는 불교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한암이 선배였지만 둘은 16세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아끼고 존경한 도반이었다. '삼소굴소식'에도 둘의 서신 20여편이 실려 있다.

경봉은 늘 법시(法施)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의 지혜를 반야지(般 若智)라고 부른다. 단순한 지식의 범주를 초월한다. 반야지의 완성은 반드시 중생에 대한 대비(大悲)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 경봉은 일상적인 설법에도 부족함을 느꼈다. 여든 둘의 나이에 일요 정기법회를 새로 개설하기까지 했다.

'옷이라도 수의라 하니까 이상하게 섭섭한 감이 든다. 본래 거래생멸(去來生滅)이 없는 것이지만 세상인연이 다해 가는 모양이니 무상이 더욱 느껴진다. 금년 병오년에서 무진년 사이는 39년 간인데 그동안 부고를 받은 것이 대략 640여명이 되니,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다들 갔는지 일거에 무소식이로구나.' 자신의 수의를 짓던 대중의 모습을 보고 일기에 적은 소회다.

1982년 7월17일 생명의 촛불이 꺼져감을 느낀 경봉은 문도들을 불렀다. 시자 명진이 물었다. "스님 가시고 난 뒤에도 스님을 뵙고 싶습니다. 스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잠시 미소를 지은 경봉은 말했다.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아라." 죽음을 앞두고도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된 마지막 육성이었다. 마음 속의 주인공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삶을 경작해온 경봉은 이렇게 이승과의 인연을 접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주인공아!"

"네."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가?"

"네."

"남에게 속지 말거라."

"네."

무문혜개(無門慧開)의 저서 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주인공' 이야기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당나라 말기 선사 사언(師彦)인데 매일 바위에 앉아 참선하면서 이렇게 자문자답을 했다. 여기서 '주인공'은 '참 나'로 불성(佛性) 또는 본래면목을 가리킨다. '남'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이전의 '나'를 뜻한다. '선 이야기'의 저자 지우(智宇)스님은 이를 영성적 자기와 감성적 자기로 표현한다. 영성적 자기가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본질적인 나'라면 감성적 자기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성냄, 그리고 개인적·사회적 욕망을 품고 일상을 살아가는 '현재적인 나'이다.

우리 모두는 이 같이 두 종류의 자기와 더불어 삶의 길을 가는 나그네인 셈이다. '이 뭐꼬(是甚뾚·시심마)의 화두를 들고 경봉은 자신을 백척간두로 몰고 갔다. 경봉은 마침내 깨달음의 법희(法喜)에 흠뻑 젖는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고 있는데(我是訪吾物物頭·아시방오물물두)

눈 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目前卽見主人樓·목전즉견주인루)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阿阿逢着無疑惑·아아봉착무의혹)

우담발화 꽃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優鉢花光法界流·우발화광법계류)

부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기 자신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경봉의 오도송은 집착과 망상을 제거한 끝에 오롯이 나타난 주인공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구해야 할 깨달음도 없고 구하는 수행 또한 없음을, 그리고 깨달음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는 자체가 미혹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늘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다이모니온(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했다고 한다. 다이모니온 역시 본래면목, 즉 주인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쯧쯧 무정한 나의 주인공아/ 이제사 만나다니 어찌 이리 늦었노/ 하하 우습다. 내가 그대 집 속에 있었건만/ 그대 눈이 밝지 못해 늦었을 뿐이네.' 경봉은 확연대오(廓然大悟)를 이룬 뒤에도 마음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경봉, 즉 주인공과 수시로 문답하는 태평가를 부르며 지혜의 거울에 티끌이 묻지 않도록 확인했다.

● 연보

1892.4.9. 경남 밀양 출생, 속성은 광주 김(金)씨

1907.6.9. 모친상을 당한 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 법호는 경봉, 휘는 원광

1927.12.13. 극락암에서 대오(大悟)

1935. 통도사 주지

1953. 극락선원 조실

1982.7.17. 세수 90, 법랍 75세로 입적 법문집 '법해(法海)', 시조집 '원광한화(圓光閒話)', '삼소굴일지' 등의 저서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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