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와 하도급의 주종관계 속에서 각자의 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고 있다. 산업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기술 고도화로 업체간 협력을 통한 상승효과(시너지)의 추구가 절실해지면서 서로를 사업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생산과 경영에서 '한 몸처럼'
중소기업과의 협력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는 모범적 사례 중 하나로 삼성전자가 꼽힌다. 100여 개 이상의 중소기업으로부터 각종 부품과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삼성전자는 협력업체들의 제품 생산 능력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품질경영 지원사업. 199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해 협력업체들의 ISO-9000 국제 품질 인증 취득을 유도하고, 6시그마(제품 불량률 100만분의 3) 품질 경영 운동 등을 지원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중소기업과 함께 커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지론"이라며 "협력업체와의 '윈-윈 전략'으로 포괄적인 생산 및 경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2001∼2002년 연속 중소기업청의 '대기업 집단 계열사의 중소기업 협력 실태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술개발에서도 윈-윈 추구
생산 및 경영 효율성의 수준에서 중소기업을 지원,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방식이라면 포스코는 중소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포스코는 1999년부터 '중소기업 공동 연구개발제도'를 시행 중이다. 올해로 5년째를 맞고 있는 이 제도는 이제 가시적인 성과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전체 연구비는 참여 기업들이 분담하며, 포스코가 연구비의 절반정도를 지원하기 때문에 참가 기업이 많을수록 중소 기업들의 연구비 부담은 줄어드는 셈이다. 특히 포스코가 자랑하는 포스코 기술연구소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공과대학 등이 참여하기 때문에 산학 협동의 모범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 기업들의 기술 축적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는 관계 필요
이밖에 LG전자, GM대우 등도 '경영혁신 컨설팅' 지원 협력업체와 설계·구매·재고의 온라인 통합 관리 협력업체의 배타적 공급 원칙 포기 본사를 통한 해외 진출 지원 등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고무적인 사례가 점점 늘고 있지만 중소기업계의 대표자들은 대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김영수 회장은 "아직도 정기적인 납품가 인하 요구, 재고 떠넘기기, 납품대금 지연 지급 등 부작용이 여전하다"며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한 첫걸음은 중소기업과의 공정거래관행 정착"이라고 강조했다. 또 곽수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경제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할 일은 따로 있다"며 "대기업은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하는 문어발 경영에서 벗어나 중소기업과의 협력아래 핵심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