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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회 칸 영화제 폐막/잔치는 끝나고… 쓸쓸함만 남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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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회 칸 영화제 폐막/잔치는 끝나고… 쓸쓸함만 남긴 "칸"

입력
2003.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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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에 비해 초라했던 잔치상25일(현지시각) 폐막한 56회 칸 영화제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출품작이 평년 수준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영화들은 "경쟁작에 오를 영화가 모자라 끼워 넣은 게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프랑스 영화를 뺀 다른 유럽 영화도 뚜렷한 주목을 받은 영화는 드물었다. 통속극의 대가인 푸피 아바티의 이탈리아 영화 '마음은 어느 곳에'도 세기 초의 영화미학을 전시하는 칸의 쇼 윈도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가장 높은 관심을 끌었던 만큼이나 실제 뚜껑을 열고 나서 세인들의 허를 찌르는 미학적 발명가로서의 저력을 다시 확인시켰다. 하나의 연극 무대에서 세 시간 분량의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웬만한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하기 힘든 실험이다. 그러나 폰 트리에의 재능은 발명가 이상의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관객의 심리를 쥐고 흔드는 솜씨가 있지만 뒷맛은 허전하다. 인공 조미료를 너무 많이 친 음식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4일 만에 촬영한 황금종려상 수상작 '엘리펀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는 아주 특이한 영화다. 한 때 미국 독립 영화의 희망이었으나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등으로 안전한 주류 할리우드 감독으로 전향한 구스 반 산트의 '전향 작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초저예산 영화 '엘리펀트'는 미국 교내 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80분 분량의 소품으로, 그저 예닐곱명 고등학생의 일상을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스테디캠에 실린 우아한 카메라 워크에 취해 있는 동안 예기치 않은 교내 총기 폭력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스크린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긴장과 고통을 안겨주는 그 폭력 장면의 클라이맥스는 폭력을 오락적인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았을 때 어떤 절실한 경험을 관객에게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는 또한 '돌아온 탕아' 구스 반 산트의 건재를 증명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다호'를 만들었던 1990년대 초반부터 칸에 오고 싶었다"던 구스 반 산트. 95년 '투 다이 포'가 특별 상영작으로 초청된 이래 구스 반 산트가 칸에 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 고등학생을 출연시켜 불과 4일간 촬영해 완성한 '엘리펀트'는 인생의 조각, 그렇지만 가장 농밀한 인생의 조각을 포착한 뛰어난 시적 진실이라고 할만한 것을 추구하며 어떤 대작 영화보다 서너 배는 넘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또 다른 걸작 발표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올해 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영화는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이다. 숀 펜과 팀 로빈스가 나오는 장중한 범죄 드라마 '미스틱 리버'는 이제 할리우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전적 영화의 품격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물론이고 봉합되지 않는 윤리적 갈등을 냉정하게 파헤치는 노 감독의 시선에선 어떤 경외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밖에 구로사와 기요시의 '밝은 미래', 카와세 나오미의 '사라소주' 등의 일본 영화는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으며 일본 영화의 미시적 주제에 서구 관객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다섯시'는 이란 영화의 저력을 확인시켜 줬지만 큰 기대를 모은 중국 영화 로우예의 '퍼플 버터플라이'는 대작 액션 영화와 예술적 야심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범작이었다.

이미 수상 결과가 나왔지만, 필자에게 칸 수상을 결정하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를 꼽겠다. 그밖에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작품은 도회적 고독을 잘 묘사한 누리 빌게 세일란의 터키 영화 '디스턴트', 미국 독립영화의 결기를 보여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거장의 원숙한 여유를 느끼게 해 준 드니 아르캉의 '바바리안의 침공', 3년 연속 칸을 찾아온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아버지와 아들'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칸은 이 영화들 말고는 뚜렷이 떠오른 작품이 드물었다.

/칸=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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