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은 비유법의 고수다. 15㎏이 넘는 갑옷을 입고 연기하는 것을 "잽만 맞으며 20라운드 뛴 기분"이라거나, 극중 무술 장면을 어떻게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후세인이나 럼스펠드가 전쟁에서 싸우더냐. 나중에 에어쇼나 해주겠지"(장수 역이라 움직이는 역할은 많지 않다는 설명)라고 답하는 식이다.세련된 웃음이 뭔지 안다. 그래서 그가 택한 코미디 '황산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박중훈은 서기 660년 아내와 가족을 단칼에 베고, 혈혈단신 적진으로 향한 계백 장군 역을 맡았다.
"요즘 유행하는 코미디에 어울리는 후배들은 따로 있다. 의미도 있고, 진실성도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문제는 배우를 오래 해서 이제는 신선함을 스스로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다. 갑옷을 입으니 새로운 기분도 들고 사투리 연기도 처음이라 새롭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여태까지는 단독 드리블로 골을 넣어야 하다는 부담이 컸다면 이젠 조직력으로 승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김유신 역의 정진영이 듬직하게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면, '거시기' 역의 이문식, 의자왕 역의 오지명이 웃음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코미디의 근본은 뒤집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유리하다. 계백 얘기를 해보자. 장군이 평소 집안을 잘 돌보았겠나. 이런 가장이 어느날, '자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래서 다소 비장한 '깨끗하게 가야 된당께' 하는 대사를 애원조의 '제발 깨끗하게 가장께'로 바꿨다. 장군이 빌면서 가족을 죽이는 상황. 의외 아닌가?" 이준익 감독이 박중훈에게 "코미디하지 말라"는 얘기가 결국은 이런 고급 코미디를 지향하는 것임을 그는 이미 눈치챘다.
"할리우드 입문 후 5년은 지켜봐 달라"던 박중훈. 올 겨울쯤엔 할리우드에서 백인 여성과 동양인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할 예정이다. 쉴 새 없다. "우리 관객들은 박중훈에게 1인 2역을 요구하는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계속 작업할 생각이지만 우리 관객도 놓칠 수 없다. 우리 관객 사랑을 받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해 청룽(成龍)이나 저우룬파(周潤撥)가 중국권에서 외면당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귀여운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에이, 이런 말은 할리우드에서 진짜 성공한 다음에 해야 되는데…."
'황산벌'은 현재 조성중인 백제역사재현단지에 세운 2만여평 세트에서 7월말까지 촬영을 마치고, 10월 개봉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