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일전(31일)을 닷새 앞둔 26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는 태극전사들의 거친 호흡이 다시 터져나왔다. 전날 K리그를 소화하느라 쉴 틈이 없었지만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스파이크 자국을 새기며 달리고 또 달렸다.구장 한쪽 구석에선 트레이닝복 차림의 움베르투 코엘류(53) 감독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라틴계 특유의 쾌활한 표정이었지만 간간이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간다. 이번 일본과의 2차 친선경기는 반드시 승리, 1차전 패배(0―1)를 설욕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3일과 이날 잇따라 기자를 만난 코엘류는 자신의 속내를 한 꺼풀씩 털어놓았다.
'일본은 강한 팀'
"일본은 조직력이 최대 강점이며 개개인의 기술, 체력도 강한 편이다." 코엘류의 평가는 간단했다. 단점이 뭐냐는 질문에는 "우리의 장점이 일본의 단점"이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농담처럼 건넨 이 말은 코엘류의 축구관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어느 스포츠나 그렇듯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려 득점하는 건 축구도 매한가지. 일본 뿐 아니라 강팀을 이기려면 상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작은 허점이라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본의 균형을 무너뜨려 우세를 잡으면(장점) 일본이 지는 것 아니냐(단점)는 말을 짓궂게 돌려 표현한 셈이다.
'나는 4―4―2가 좋다'
코엘류가 자주 쓰는 포메이션은 '4(수비)―2(수비형 미드필더)―3(공격형 미드필더)―1(원톱)' 이다. 그는 그러나 "개인적으론 현대축구의 주류인 4(수비)―4(미드필더)―2(공격)를 좋아한다"고 공언한다. 4―3―3(미드필더 한명을 공격수로 전환)이나 4―2―3―1은 따지고 보면 모두 4―4―2의 변형이다. 이는 현재의 시스템이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시스템이 중요한 건 팀워크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라며 "선수 모두가 항상 컨디션이 최상일 순 없는 만큼 시스템으로 팀워크를 고르게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팀워크가 좋으면 건설적인 축구가 가능하고 그러면 예술적인 축구가 나오게 된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포르투갈에도 맨땅축구, 뻥축구가 있지만 패스축구 역시 있다"며 '패스게임은 한국축구에 부적합하다'는 일부의 지적을 경계한 그는 "패스가 중요한 건 이를 통해 경기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붉은악마가 나를 오게했다
코엘류는 "한국축구에 대해 솔직히 잘 몰랐다. 하지만 붉은악마를 보고 저 정도 응원문화가 있는 나라라면 갈만 하다고 생각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엄청난 교통체증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는 한국 사람들이 라틴계처럼 발랄해 금방 친숙해질 수 있었다.
"나와 한국축구는 지금 발전을 추구하는 단계에 있다.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엄살을 떤 그는 "포르투갈 감독 시절에도 많은 비난을 샀지만 결국 성공을 거뒀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코엘류는 요즘 프랑스인 아내 로랑스와 딸 조한나(17)를 학업문제로 프랑스로 돌려 보내 종종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한국축구에 대한 분석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취미인 골프(핸디 13)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나의 철학은 '승리'
목표는 당연히 2006 독일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 코엘류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묻어난다. 국민들은 독일월드컵에서도 예선통과는 물론 4강 이상의 성적을 기대할 것이라는 말에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러나 "나의 축구철학은 이기는 것"이라며 "선수의 질이 경기의 질을 좌우하고 결과적으로 승리를 이끌어 내게 된다"며 평범하지만 철학이 배어 있는 소신을 피력했다. 한국축구의 터전인 K리그를 두고 "2부 리그 탈락제도가 없어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쓴 소리도 잊지 않은 그는 "모든 걸 고려하고 분석한 뒤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겠다"는 말로 각오를 대신했다. 코엘류는 포르투갈에서 축구경기를 본 적이 있다는 기자의 말에 대뜸 "포르투갈의 인상은 어떠냐"고 물어왔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자 그는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한동안 흐뭇해 했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사진=고영권기자
● 프로필
생년월일 1950년4월20일
출생지 포르투갈 포르투
가족관계 부인 로랑스(47)와 2녀
선수경력 라말덴세, 벤피가, 프랑스 생제르망
지도자경력 살구에이로스 감독, 브라가 감독, 포르투갈 감독, 모로코 감독
한국대표팀 계약 2003년3월∼2004년8월
■ 한국생활 이모저모
최근 코엘류 감독의 한국 생활을 취재했던 포르투갈 기자는 "그가 왜 한국행을 택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로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려 놓은 코엘류가 유럽에서의 인기를 뒤로한 채 '변방'인 한국 대표팀을 맡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월드컵 4강 신화에 빛나는 한국은 '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만큼 히딩크 전 감독의 후임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히딩크도 "한국팀을 다시 맡으면 잃을 것 밖에 없다"고 토로할 만큼 태극호 선장은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다.
코엘류가 히딩크에 견주어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 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 '인간 코엘류'는 일단 합격점이다. 시골 아저씨 같은 푸근한 외모에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겸비한 그는 한국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물 좀 주세요', '우린 할 수 있다' 등 우리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가 하면 '문화를 익히기 위해' 국수전골과 비빔밥 등 매운 맛도 마다하지 않는다. 젓가락질도 자유자재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히딩크가 스파게티라면 코엘류는 된장국을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코엘류는 1년 6개월 동안 거의 마음대로 대표팀을 소집, 직접 기량을 점검한 히딩크에 비해 '권한'이 제한돼 있다. 때문에 그는 비디오 분석을 통해 한국 축구를 '간접'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또 프로축구 K리그를 매주 따라다니는 등 옥석을 가리기 위한 발품팔이를 아끼지 않는다. "프로구단과 대표팀은 같은 배를 탄 동료"라고 강조해 온 그는 직접 프로 감독을 찾아가는 등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평소 대표팀을 향해 쓴 소리를 자주 해온 김 호 수원 감독도 20일 "프로 감독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이 배우길 바란다"는 덕담까지 들려줄 정도로 코엘류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달 16일 첫 방한했던 아내 로랑스와 둘째 딸 조한나도 화사한 미소로 한국팬을 확보하는 등 친근함으로 다가섰다. '히딩크 신드롬'에 이어 '코엘류 돌풍'이 다시 한번 한반도를 강타할 지 주목된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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