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간의 논쟁을 부른 '백제의 익산 천도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소장 김삼룡)가 23일 설립 30주년을 맞아 '익산 문화권의 성과와 과제'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는 그 동안 제기된 익산 천도설 관련 연구 성과와 쟁점을 총정리하고 고고·문헌사학 양면에서 천도론에 비중을 두었다. 20여 편의 관련 논문이 발표된 이날 학술대회에 참가해 난상 토론을 벌인 100여 명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익산 천도설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였다.논란과 쟁점
1950년대 역사학회에서 황수영(85) 박사가 처음 제기한 익산 천도설은 지금까지 지지와 부정이 팽팽했으며 그 결과 천도가 준비에만 그쳤다는 '미완의 왕도설'이 통설이었다. 이병도 박사를 비롯, 천도설을 부정하는 측은 천도와 같은 중요한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무왕 31년(630년) 사비성을 중수하고 웅진에 행차했다가 여름에 한발이 들어 사비성 공사를 중단하고 웅진에서 (사비로) 돌아갔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익산이 언급되지 않은 점 등은 천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1970년 중국 육조(六朝)시대의 문헌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현재 왕궁리 근처)로 천도해 새로 사찰을 경영했다. 639년에는 제석정사가 불탔는데 불사리병 등은 타지않고 남았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천도설이 본격 제기됐다. 또한 90년대 이후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보이는 쌍릉 발굴 등 고고학적 성과가 쏟아지면서 천도설이 힘을 얻어 가고 있다.
"천도설"의 새 논거
이번 대회에서 이도학(전통문화학교) 송일기(전남대) 나종우(원광대) 교수와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 등이 관세음응험기와 삼국사기 등에 대한 문헌고증과 함께 새로 발견된 고고학 자료 검토를 토대로 천도설을 폈다.
이 교수는 '백제 무왕대 익산 천도설의 검토'라는 논문에서 관세음응험기와 삼국사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무왕이 즉위 전반기(630년 이전)에 자신의 세력 근거지인 익산을 왕도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비성 중수(重修)에 관한 삼국사기 기사는 무왕이 중수를 위해 잠시 웅진성으로 거소를 옮긴 것이 아니라, 사비성을 중수하고 있을 때 제3의 장소, 즉 익산에 있다가 웅진성으로 행차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밖에 왕궁리 유적과 '수부(首府)'라는 명문이 적힌 기와, 무왕의 무덤으로 드러난 쌍릉 등을 천도설의 근거로 들었다. 그는 또 삼국사기가 천도 사실을 기록하지 않은 것과 관련, "미륵사 창건이나 광개토왕비에 기록된 여러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국사기 내용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송일기 교수는 익산 왕궁탑 출토유물이 백제 때 제작된 것으로 보아 천도설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는 왕궁탑에서 나온 '금지금강사경'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 결과 백제 무왕대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만약 이 금강경이 무왕 때 제작됐다면 실제로 무왕이 수도를 옮겨 절을 짓고 탑을 만들었다는 근거가 된다. 지금까지 왕궁탑이 신라말 고려 초에 세워진 탑이라는 주장이 통설이었고 그 안에서 나온 유물도 백제 때 제작된 것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왕궁리 유적에서 유리와 금을 가공한 공방 터와 성벽 등이 발굴됐는데 이는 현지에서 직접 제작돼 탑에 봉안됐을 가능성을 말해준다"며 "이 정도로 다양하고 중요한 유물, 유적이 있다면 왕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망
익산 천도설이 정설이 되면 백제사 후반부에 대한 역사교과서 서술이 수정돼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천도설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의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중국 계명대 교수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무왕이 천도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막판에 사비 지역 귀족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했다"며 "이는 조선시대 정조가 화성을 지어놓고 천도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평지인 익산이 방어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왕궁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왕궁리 유적을 중심으로 백제 유물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천도설은 단순한 '설'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973년 연구소를 설립해 관련분야에 대해 15차례의 학술대회와 50여 차례의 발굴조사를 주도하며 끈질기게 매달려온 김삼룡 소장은 "최근 천도설을 뒷받침할 각종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이 확인됨으로써 천도설은 육하원칙에 의거해 입증될 전기를 맞았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익산=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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