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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대통령은 연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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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대통령은 연주자가 아니다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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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지 3개월이 지났다. 처음 기대와는 달리, 노 대통령의 집권 3개월을 지켜본 국민들은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벌써부터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재판(再版)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의 소리들이 들린다.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지지세력을 등돌리게 하면서 반대세력도 포용하지 못한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추진되다가 실패하였는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은 집권초기의 미숙과 경험부족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난맥상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새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과거의 정권이 저질렀던 시행착오를 반복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시간 낭비이다. 더구나 국가경영을 아마추어 정객들의 한가한 정치실습으로 여긴다면 이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최근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심경을 토로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그 말이 나온 배경과 대통령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이제 취임 3개월 밖에 안된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가장이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4,700만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고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대통령직은 집권기간에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달라고 국민들로부터 국정운영을 위임받은 당연히 골치 아픈 자리다. 그래서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비서진과 각 부처장관들이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참모들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명지휘자가 되어야 하지 스스로 명연주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현안들에 대통령의 목소리만이 들린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이하 해당 부처 장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책임총리제를 실시하여 총리로 하여금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토록 하고, 장관들의 임기를 일정기간 보장하여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법과 원칙에서 벗어난 임기응변식 문제해결과 국정운영 방식은 더 큰 화를 자초하여 결국 수습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래 다원화한 민주주의 사회에선 다양한 이익집단과 사회세력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에 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조정을 늦추거나 원칙없는 문제해결 방식은 사회구성원의 불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1970∼80년대 노조를 포함한 각종 이익집단들의 첨예한 이해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분열과 위기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사회구성원의 3분의 2가 동의할 수 있는 정책수립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노사모와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을 얻었으나,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분을 요구받지도 않았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도 비교적 자유스러운 입장에 놓여있으며 원칙과 소신에 따른 정책결정과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고, 정치적 상황논리를 내세워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림으로써 지지층을 이탈시키고 정치적 불신과 냉소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아울러 지금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잡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일들은 질질 끌거나 적당히 넘어갈 사안들이 아니다. 정리할 것이 있으면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다. 여론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등돌리기 시작하며, 한번 등돌린 여론을 되돌리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노련한 등산가는 처음 오르는 산일 경우 무턱대고 등산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산을 조망하고 등산과 하산의 경로를 꼼꼼히 살펴보는 법이다. 노 대통령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려 하지 말고 숲 전체를 볼 줄 아는 여유와 통찰력을 가지고 5년간의 국정을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지금의 노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의 노짱이 아니다.

송 병 록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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