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와 다시 만난 것은 기적입니다. 개인컬렉션의 가능성을 거의 기대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기회를 얻은 셈이에요. 구호의 브랜드파워를 키워서 세계시장에 도전할 계획입니다."올 봄 패션가의 최대 사건은 '구호와 (정)구호의 재결합'이었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씨가 자신이 낳은 여성캐릭터브랜드 '구호'의 디자이너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번 재회는 글로벌 패션기업 도약을 꿈꾸는 제일모직이 정씨를 여성복 부흥의 수장으로 영입하면서 '집나갔던' 브랜드까지 찾아와 원주인의 품에 안겨주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더 시선을 끈다.
정씨가 1997년 탄생시킨 구호는 간결하고 구축적인 디자인을 통해 고유한 아우라를 담는 데 성공, 90년대 후반 한국패션계의 기린아로 급부상한 브랜드다. 그러나 정씨는 2000년 사업동반자였던 (주)nsf와의 의견차이로 구호에서 손을 떼 패션계의 안타까움을 샀다.
"구호를 처음 만들 때는 마스터플랜이 있었습니다. 여성복으로 시작하지만 구호옴므, 구호리빙, 구호액세서리 등으로 넓혀나가 브랜드 파워를 키워보자는 거죠. 그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의 성공전략이기도 합니다. 그걸 못다한 한이 컸는데 이제 다시 욕심을 내게 되네요." 그의 공식 직함은 상무이지만 구호팀의 총괄디렉터가 그의 실제 역할이다.
정씨의 제일모직 입성은 대기업과 재능있는 디자이너의 전략적 동침이 여전히 브랜드 파워 구축을 위한 유효한 전략으로 인정받고있음을 보여준다. 정씨는 대기업의 막강한 자금력과 유통망이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데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국내 디자이너브랜드는 아무리 성공해도 부티크 수준에 머물지만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조그만 디자이너 부티크에서 출발, 창의성을 인정받으면 대기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커갑니다. 이제 우리도 그런 방법론을 받아들여야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구호는 내셔널브랜드이면서 디자이너 브랜드로서의 개성과 인지도가 살아있다는 게 장점인데 그게 대기업의 힘이 보태지면서 좀 더 부각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씨가 직접 디렉팅하는 구호는 올 가을 상품부터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인다. 벌써 현대무용을 소재로 한 이미지광고 작업을 마치고 8월부터 일반에 선보이기 위해 마지막 손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호스타일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네오클래식한 라인에 트렌드를 가미하되 구호 특유의 선(禪)적인 감성이 살아있는 옷'이다. 정장 한 벌에 70만∼100만원선, 전체 상품의 약 10∼20% 정도는 구호의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초고가의 컬렉션라인으로 구성한다. 10월초에는 구호 패션쇼도 따로 연다.
원대연 제일모직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정씨를 "인테리어를 전공했으면서 옷을 만드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처럼, 학습된 것이 아닌 천부적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정씨는 뉴욕 파슨스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으나 패션디자이너로 인생을 바꿨다. 패션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복 분야에서 유독 재미를 못봤던 제일모직이 정씨 영입으로 역전 홈런을 날릴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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