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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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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記]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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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려면 담배를 끊고, 못 끊겠다면 나가라." 금호그룹에서 18년째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간부 금연 수칙이다. 애연가들이 들으면 나자빠질 얘기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내 주장에 수긍할 것이다.대기업의 간부가 자리보전이라도 하려면 자신의 건강을 돌볼 줄 알고, 의지도 강해야 한다. 담배에 손을 댄다는 것은 건강에 대한 애착이 없을 뿐 아니라, 의지도 박약하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에게 중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평사원들도 '흡연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금호의 금연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배를 배워 20여년간 끼고 살았다. 1개월∼1년 단위로 담배를 끊은 적은 있었지만, 담배는 항상 나의 옆에 자리잡고 있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마흔 줄에 접어들어서는 달랐다. 담배에서 한 동안 손을 떼고 있으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걸 깨달았다. 그 느낌이 좋아서 1981년 담배와 절연하기로 했다. 담배는 나에게 중독성 물질이 아니라 습관성 기호 식품 정도였기 때문인지 특별한 금단현상도 없었다. 금연의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오후 3시쯤이면 골치가 지끈거리던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대기업의 리더인 내가 혼자만 이런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86년 8월 나와 임직원 142명이 금연을 선언하고, 금호의 전 사업장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했다.

임직원들이 겉으로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내심 반발이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사상 불이익' 엄포에도 주차장, 계단 등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골초들이 속속 나타났다. 아시아나 빌딩의 후미진 곳에서 담배연기가 새어 나와 주변 상인들이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흡연 얘기가 들려 올 때마다 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누구 소행인지 당장 밝혀내라"고 호통쳤다. 몰래 담배 피운 직원을 잡아 오라는 것이 아니라 총수의 금연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오버'였다.

89년 11월에는 모든 임직원 집에 '가정통신문'을 직접 써서 보냈다. "회사에서 금연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가족들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사와 집에서 전방위 압력이 들어오니 담배를 밥 먹듯 즐기는 직원들도 차례로 '투항'했다. 91년부터는 사내 어느 곳에서도 담배 꽁초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직원들의 잔병치레가 없어져 병가나 조퇴를 신청하는 일이 대폭 줄었다.

금연 운동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92년 7월과 같은 해 9월 각각 금호건설 운송사업부의 전차량과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시간 1시간 30분 이내 노선에 대해 완전 금연을 선언했다. 94년 1월부터는 아시아나항공 전노선에서의 금연을 실천했다.

승객과 탑승객들의 항의는 예상외로 미미했다. 흡연자들은 '언젠가 끊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인지 금연 방침에 쉽게 따라줬다. 전사 금연, 고속버스 금연도 국내 최초 기록이지만 항공기 금연은 세계 최초의 시도로 현재는 국제 상식이 됐다.

금연 운동의 취지와 같은 맥락에서 97년에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에이즈 검사를 실시했다.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한 '이벤트'였다. 금연에 성공한 직원들이 자칫 일탈할 수도 있다는 '기우'에서 실시한 검사였지만 에이즈 보균자는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담배는 여럿이 함께 모질게 끊어야 한다. 혹자는 흡연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완전 금연에 도달하겠다고 주장하는데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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