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 소렌스탐(33·스웨덴·사진)은 결국 '에베레스트'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패배자로 부르지 않았다. 도전은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고 위대했다.24일(한국시각)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CC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뱅크오브아메리카 콜로니얼 2라운드 18번홀. 3.7m짜리 파퍼팅을 성공시키며 라운딩을 마친 소렌스탐은 기립 박수를 보내주는 관중에 답례한 뒤 스코어카드를 제출하기 위해 본부 텐트로 걸어가면서 여러 차례 눈가를 훔쳤다. 그 눈물에는 PGA 투어 도전을 선언한 뒤 3개월여 동안 흘린 땀방울의 결과가 컷 오프로 마무리된 데 대한 회한과 미스 샷을 할 때도 자신에게 격려를 잊지 않았던 팬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2라운드 합계 5오버파 145타. 컷 오프 기준선인 1오버파와는 4타차로 출전선수 111명 중 공동 96위에 해당하는 초라한 성적이다. 소렌스탐의 표현대로 "힘이 닿는 데 까지 올라갔지만 (에베레스트 정복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이날 1번홀(파5·565야드) 파 세이브에 이어 2번홀(파4·400야드)에서 2m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면서 한 타를 줄일 때만해도 컷 오프 통과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 했다. 그러나 전날 "36홀을 돈 것 같다"고 토로할 만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던 소렌스탐은 5번홀(파4·470야드)에서 보기를 범하면서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전날 단 한번 실수에 그쳤던 드라이버 샷은 세차례나 페어웨이를 벗어났고 8번이나 그린을 놓친 소렌스탐은 러프와 벙커를 전전하며 파세이브를 하는 데도 힘겨운 모습이었다.
역시 거리가 문제였다. PGA 투어 코스 중 비교적 짧고 도그레그가 많아 선택하기는 했지만 드라이버 샷(평균 비거리 268야드)을 날린 뒤 바라다 보이는 그린은 너무 멀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고 단단한 그린 위에서 이틀동안 64개의 퍼트를 범한 것도 어쩔수 없는 한계였다.
넘어야 할 고개는 코스만이 아니었다. 600여명이 넘는 보도진과 1만명에 가까운 갤러리, 1라운드 중계 사상 최고의 시청률(1.7%)을 기록할 만큼 높은 관심을 보여준 골프팬들은 물론 자신의 PGA 도전에 쏟아진 편견과 냉대도 모두 샷으로 답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소렌스탐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정신적 부담감을 안겨줬다.
소렌스탐은 그녀의 땅으로 돌아갔다. "일주일 동안 잠만 자고 싶다"는 소렌스탐은 31일 일리노이주 오로라에서 열리는 켈로그-키블러클래식에 출전, '여자'들을 상대로 타이틀 방어에 나설 계획이다.
소렌스탐은 다시 도전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세계 골프팬들은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네오'처럼 '성벽(性壁)'을 깨뜨릴 '그(The One)'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183㎝의 신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300야드 안팎의 호쾌한 장타에 마스터스에 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할만큼 당찬 배포를 가진 재미 동포 미셸 위(14)가 후보로 꼽힌다. 도전은 계속된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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