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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3개월 / 국정위기 본질과 타개책 모색 / 전문가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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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3개월 / 국정위기 본질과 타개책 모색 / 전문가 좌담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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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25일로 출범 3개월을 맞았다. 취임 초 그가 제시한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과 시스템을 통한 정책 시행은 벌써 퇴색하고, 미숙함과 아마추어리즘만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6대 대선 다음날인 12월26일 대담에서 노무현 후보 당선의 의미를 짚었던 서울대 안청시(安淸市) 교수와 서강대 손호철(孫浩哲) 교수를 다시 초청, 현 위기의 본질을 찾고 타개책을 모색해 보았다./편집자주

안청시 교수 손 교수와 나는 16대 대선 다음날 한국일보 대담에서 새 정부에 기대를 표명하면서도, 사회 전반에 내재된 균열을 직시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선거 당시의 지지기반 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를 펼치길 바랐습니다. 이 기대가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노 대통령이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가 한 얘기는 '취임 3개월 동안 뭐했나'고 하는 스스로의 의문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물연대 파업, 전교조와 한총련, 대미·대북 문제에서 혼선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지지세력의 비판까지 받게 되니 답답한 거지요. 이는 노 대통령이 자초한 것입니다. 청와대 구성에서 코드만 강조하다 보니, 코드가 맞는 사람과 전문가그룹, 부서간 손발이 맞지 않게 됐습니다. 일관성이 쉬 무너졌고 임기응변식 대응이 잦았습니다.

손호철 교수 3개월은 아주 짧은 기간이고, 작금의 상황이 국정혼란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긍정적인 면도 좀 보고자 합니다. 우선 노 대통령은 '탈(脫) 3김'을 내건 정부답게 파당정치를 벗어나 당정분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개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잘 안됐지만 인터넷을 통해 공직자를 공모한다든지, 국무회의 등에서 토론을 강조하는 등 '인치(人治)'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시도한 것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철도 및 화물연대 파업사태 등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가능성을 보여준 측면이 있습니다.

안 교수 물론 지금의 정치상황을 혼란으로 몰고 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국민과 이해당사자는 눈에 보이는 결과와 설득력 있는 결정을 원합니다. 이를 통해 신뢰를 줘야 하는데 참여정부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초기에는 야당과의 관계를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포기한 듯합니다. 상생하지 못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무리수를 두게 되고 결국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대여 관계서도 '코드'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보수세력에겐 믿지 못할 대상으로, 지지기반에겐 등을 돌린 지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손 교수 노 대통령은 '내가 야당인지 여당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 종래의 지지기반이 떨어져가는 데 대한 우려, 혼란을 느끼는 듯합니다. 실제 최근 방미 결과를 놓고 야당은 칭찬하고 여당은 비판했습니다. 등을 돌릴 기세였던 재계는 노 대통령의 방미에 동행했습니다. 이 같은 지지세력의 교체현상이 일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좋게 보면 보수와 진보를 모두 잡는 것이지만, 다르게 보면 양쪽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중요한 기로에 선 것입니다. 물론 노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은 안정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 교수 정부의 정책이나 대통령의 언행이 안정되고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진보쪽에도 "조금 변하긴 했지만 우리편이다", 보수쪽에도 "변화에 유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신뢰가 형성돼야 하는데 그런 신뢰를 대통령의 말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자연인 노무현이 할 말과 대통령 노무현이 해야 할 말을 구분 못하는 거죠. 말을 일단 뱉어 놓고 여론을 살피다가 다시 해명하고 이러니까 과연 어느 것이 대통령 노무현의 발언인지 헷갈리는 겁니다.

손 교수 사실 노 대통령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 플레이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툭툭 던집니다. 별일 아닐 수 있는 일을 대통령 스스로 증폭시키지 않습니까. 한총련의 광주 5·18 묘역 시위사건도 '난동'으로까지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굴욕외교 논란도 마찬가지 입니다. 후보 시절 '반미면 어떠냐'고 까지 말했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치범 수용소' 발언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다시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일자 '갈릴레오' 발언으로 수습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긴 호흡으로 대응해야지 개혁의 조급성, 위기의식으로 대응해온 측면이 강합니다. 말이 너무 많고 앞서가는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안 교수 집권 여당의 역할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손을 놓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니까 여당이 국정을 제쳐놓고 신당 논란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당정협의도 없는 듯하고요. 정권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여당의 직무유기가 혼선을 부채질하는 것 같군요. 물론 이를 손가락질하며 집안단속에만 열을 올린 야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손 교수 대통령이 여당을 컨트롤하지 않기 때문에 여야 구분이 무색해진 것이죠. 앞서도 지적했듯이 당정분리의 측면에서 이 방향은 옳습니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끼어 들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안 교수 내년 총선이 11개월 남았는데, 지금처럼 정책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지속되면 노 대통령은 여야관계에 이용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야당도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주도하는 것으로 의심하게 돼 대야관계도 꼬일 수 있습니다.

손 교수 코드를 강조하다 보면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집단적으로 자기 최면에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룹싱킹'(Group Thinking)이 장점도 있지만 자칫 폐쇄적으로 변해 집단적 사고마비 현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 대통령에게 청와대 비서진이 짜 주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자기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을 아웃소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교수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방어적이기 마련입니다. 코드 맞는 사람만 모아놓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 너무 적대적으로,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당화는 벗어났는지 모르지만 사권력화의 위험성이 커진 것은 아닐까요. 청와대 내에서 전문가 그룹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권력의 제도화 측면에서 더 후퇴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 입니다.

손 교수 사권력화와 대통령 권력의 비대화는 다릅니다. 인사정책이 내용적으로 잘못됐을 지는 모르지만 '3김식'처럼 마음대로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청와대의 비대화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과거처럼 보스 개인의 사적 루트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장관 추천을 받았지만 내용적으로는 결국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기용했고, 시스템 개혁을 강조하지만 대통령은 전혀 시스템에 기초해 행동하지 않은 것 등은 분명히 비판 받아야 합니다.

안 교수 현재의 정책시스템 아래에서는 관료들이 대통령 눈치를 살피며 움직이지 않다가 사태가 터져야만이 청와대 말을 듣고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류대란이 대표적인 예지요. 대통령이 처음에 약속한 대로 내각에 책임을 위임해 실질적인 책임총리제를 시행해야 합니다.

손 교수 사회적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사회 갈등 치유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인내를 갖고 사회 각 계층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끄는 길밖에 없는 거죠.

안 교수 대통령은 스스로 깨끗해야 합니다. 정권의 도덕적 코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선 사정만이 아니라 공직기강을 다시 한번 다지는 게 필요합니다.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것, 그래서 '정치는 썩었다'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청산하는 것이 노무현 시대의 핵심 과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 줬으면 좋겠어요.

손 교수 언론의 비판에 대해 대통령은 '여기서 밀리면 진다'는 개혁 조급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국정원 인사만 해도 상생의 정치를 지키면서 자신의 뜻 대로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국정 혼란은 아니지만 노 대통령에겐 혼란으로 가는 위험 사인이 켜졌습니다. 정권이 국민을 원망할 때 위험해 집니다. 노 대통령도 이런 원망을 그만두지 않으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삭이고 자기 성찰을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안 교수 보통 집권 6개월이면 허니문이 끝나고 한 정권의 성패가 대충 판가름 납니다. 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3개월간 리더십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휴식을 권하고 싶습니다. 지금 노 대통령은 24시간을 해도 다 못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습니다. 이러지 말고 내각으로 일을 분산시키되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은 작은 짐을 벗고 큰 짐을 지는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리=이동준기자 djlee@hk.co.kr김기철기자 kimin@hk.co.kr

사진=박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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