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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레퀴엠

입력
200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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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8,000원

'세상의 죄를 대속하신 신의 어린 양/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벤자민 브리튼은 그의 '전쟁 레퀴엠'에서 '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를 향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가 애도한 것은 세상의 '공식적 폭력'에 희생된 개인이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40·사진)씨의 '레퀴엠'은 인류의 등에 짐 지워진 전쟁의 기억과 상처에 관한 글쓰기다. 거슬러 보면 인간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읊으면서, 같은 인간의 가슴에 총과 칼을 겨누어 왔다.

진중권씨가 보는 전쟁의 역사가 그러하다. 개인의 폭력은 금지됐다. 국가의 폭력은 그러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된다. "전쟁 속에서라면, 야수적 공격성도 범죄적 기질로 비난받지 않는다. 오히려 사적으로는 남성적 아름다움으로, 공적으로는 애국주의와 영웅주의의 미덕으로 칭송을 받는다."

왜 전쟁이 계속되는가? 진씨는 '이익'이라는 매우 경제적 어휘에서 전쟁 합리화의 명분을 찾는다. 최근의 이라크 전쟁에서 한국군 파병에 대한 명분 또한 '국익'이었다고 진씨는 설파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전쟁이라는 현상을 미학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진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현대 예술을 흉내내는 모습을 보인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미적 체험을 기술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충격과 공포'가 전쟁의 개념에도 활용된다는 것이다.

전쟁의 충격과 공포는 그러나 오늘날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튀어나온 내장이나 흩어진 사지 같은 이미지는 영화나 회화 같은 이미지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전쟁은 전투기 조종석의 작은 스크린과 컴퓨터 화면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참혹한 전쟁이 사라진 것일까? 진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의식 '안'에서 전쟁과 핵폭발의 가공함을 지울 수는 있어도, 그것이 우리 의식 '밖'의 참혹한 현실까지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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