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소리 번역기에 점쟁이 탐문에….' 지난달 6일 새벽 발생한 서울 송파구 삼전동 다세대 주택 일가족 3명 피살 사건 수사에 전대미문의 수사 기법이 동원됐다.사건 발생 당시 범인은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질렀고, 진화 작업 때문에 시신 주변의 혈흔, 족적, 지문 등 초동 수사에 필요한 단서는 모조리 물에 씻겨 갔다. 단일 살인 사건으로는 드물게 수사인력 120명을 투입했지만 경찰은 단서 확보에 실패했다. 답보 상태에 빠진 경찰은 지난 14일 피살된 전모(22)씨의 애완견 '시추'를 발견한 뒤 활력을 찾았다. 사고 현장의 유일한 목격견(犬)인 시추에 대해 경찰은 현상금까지 내걸고 '지명수배'까지 한 상태였다. 경찰은 시추의 목에 '개소리 번역기'를 매달고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2년 전 일본에서 개발된 개소리 번역기는 개의 가슴이나 목에 매달아 개가 짖는 소리를 30여개 유형별로 분류해, "배고프다" "무섭다" 등의 언어로 변환해 액정표시장치에 나태내 주는 것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수사기법이다. 실제 현장에 간 시추는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현관문 앞에서 발버둥쳤다. 또 주인인 딸의 방 앞에서 맴도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으나,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여의치 않자 경찰은 조사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용의자들과 시추를 대질 시켜봤지만 허사였다. 개의 기억 능력이 1, 2주에 지나지 않아 시추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신통치 않았다.
낙담한 수사 관계자가 최근에는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찾아가 넌지시 '용의자가 누구일 것 같냐'고 묻기도 했다. 점쟁이가 "범인은 남자 2명이야"라고 말할 때는 침을 꿀꺽 삼켰지만 "굿을 하면 얼굴이 보일 것 같다"는 말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23일 "시추가 진돗개였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며 "아무리 다양한 수사기법을 동원해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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