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동안 세 개의 '백조의 호수'를 보았다. 모두가 최고의 명작임을 자랑할 만해서 '발레의 대명사'라는 유명세를 실감했다.하지만 고전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중 두 작품은 무늬만 '백조의 호수'다. 고전을 창작의 소재로 삼아 100년 전의 작품을 현대적 감각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5월 초에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1895년 러시아에서 초연된 원작을 볼쇼이발레단에서 계승해 온 고전이다. 흰색 튀튀를 입고 포인트 슈즈를 신은 가냘픈 백조들이 전형적인 대형과 기교를 보여준다. 이와 달리 쿨베리 발레단이 4월초에 공연한 마츠 에크의 작품(1987년 작)은 맨발의 남자 백조들이 튀튀를 입고 기괴하게 몸을 비틀었다. 무의식의 세계를 다룬 색다른 내용과 함께 차이코프스키 음악에도 마구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황당하고도 유쾌하게 보여 주었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5.20∼6.1 LG 아트센터)는 1995년 작으로 백조가 전부 남성이어서 더욱 유명해졌다. 상체를 드러낸 깃털 바지의 백조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비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백조를 묘사한다. 나이트 클럽에서 쫓겨난 왕자가 공원에서 자살을 결심하며 시작된 1막 2장에서는 특히 '차이코프스키가 임자를 만났다'는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어려웠다. 발레기교, 예민한 고개 짓, 팔의 유연성을 하나로 결합한 백조의 춤은 그 자체로도 신선하고 화려했지만 음악적 해석이 탁월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음악을 몸으로 듣는 능력에서 매튜 본은 천재였다.
시원한 도약이 장기였던 오데트 역의 헤수스 파스토르는 매혹적 연기로 극을 주도했고, 여왕을 비롯한 현실 세계의 주역들도 왕실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채워주며 현실과 환상 혹은 유머와 슬픔의 대비 효과를 유도했다. 사랑, 질투, 살인, 죽음이 이해하기 쉽게 연결된 줄거리도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한 비결이었다.
그러나 '백조의 호수'가 댄스 뮤지컬로 불리는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다. 뮤지컬의 특징인 노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차이코프스키의 고전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면 뮤지컬이 되는 것인가? 창작에서 장르를 혼용하는 것과 그 명칭을 혼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토니상 뮤지컬 감독상을 수상한 매튜 본은 이것을 뮤지컬 시어터로 부르고 있는데 그 상이 아니었다면 이런 옹색한 명칭마저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애령·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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