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옵니다. 기회가 왔을 때 내 것으로 만들 능력을 길러왔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게 됩니다."미국 상류사회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한국출신 에바 차우가 세계적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를 서울에 내기 위해 방한했다. 사교계의 명사, 최고급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의 공동 경영인, 일류 패션 디자이너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에바는 백인 중심의 미국 상류사회에서 피부색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을 쟁취한 여성이다.
중국계 남편 마이클 차우와 함께 경영하고 있는 미 LA 베버리힐스의 미스터 차우는 조지 클루니, 더스틴 호프만, 위노나 라이더 같은 톱스타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에바는 상류 인사들의 모임 장소로 자리잡은 미스터 차우를 베버리힐스 말고도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 두고 있는데, 동양권에서 처음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서울에도 개설할 예정이다.
공사비만 50억원이 책정돼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미스터 차우 서울'(서울 논현동 옛 시네하우스 빌딩)은 내년 1월 개점과 함께 국내 외식 업계에 돌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1층은 100석 규모의 다이닝룸, 2층은 프라이빗룸, 3층은 라운지바로 꾸며진다. 예상 객단가(손님 1인당 경비)는 7만원선.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를 운영하는 롸이즈온(riseON)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었다. "국내 여러 기업들로부터 한국점 개설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롸이즈온의 문영주 대표이사가 문화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것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했지요."
서울 태생인 에바는 18세에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건너가 낯선 세계에 들어섰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에 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좌절감을 겪기도 했지만 미국 사회의 진취성과 도전 정신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사회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북돋워주며 합리성과 혁신을 중요시합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스스로를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하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미국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미국 사회는 여전히 건강하고 생동감 넘치는 곳이지요."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하다가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곳이 할리우드 영화계. 영화 프로듀서 디노 디 라우렌티스의 스태프를 거쳐 '007 시리즈'의 테렌스 영 감독에게 발탁돼 MGM 영화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럼에도 유년 시절부터 마음에 담아온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끝내 못 놓아 20대 후반에 '오티스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의상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에바 전' 브랜드를 만들어 바니스, 버그 도프 굿맨 같은 유명 백화점에 납품했다. 그는 '패션계의 명사모임'으로 불리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회원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을 딴 '에바 전' 브랜드 작품들은 '보그'를 비롯한 유명 패션지에 자주 실리고 있다.
에바는 마이클 차우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작고한 중국 오페라 가수 주신방의 아들인 마이클은 1960∼70년대 '식스티즈'로 대변되는 문화의 중심지였던 런던에서 미술과 건축을 공부하면서 마를렌 디트리히, 비틀즈, 데이빗 호크니, 비달 사순 등 당대의 문화 예술인들과 교류해온 유명인사. 68년 영국 런던에 중국식 고급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를 처음 개설했다.
에바는 "베르사체의 개인 파티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마이클을 처음 만났는데, 데이트를 하면서 친구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90년 결혼했고 외동 딸 에이샤(8)를 두고 있다.
에바는 자신의 성공비결은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도 '오래된 신발'을 신은 것 같은 편안함을 주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철학은 미스터 차우의 경영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그는 "이 곳을 찾는 유명인사들을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한다"면서 "유명 인사들은 자신들이 보통 손님처럼 평범하게 대우받기를 원하며 특별 대접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기 며칠 전 친분을 유지해온 인사들을 초청해 미스터 차우에서 파티를 열었지요. 가수 스티비 원더가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줄 모르고 왔다가 처음에는 당황해했지만 내 소개로 파티 손님들과 유쾌하게 어울렸어요. 미국 사회에선 초대받지 않고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드문데 미스터 차우를 찾는 손님은 누구나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가능한 일이지요."
대부분 단골인 손님들은 미스터 차우에서 와서 그저 "저번의 그걸로 주세요"하는 식으로 주문을 한다. 올해로 35년째인 베버리힐스 미스터 차우 개점 당시부터 근무해왔던 종업원들이 지금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편안함을 연출하는 요인 중 하나다.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러스가 어린 시절 아버지 커크 더글러스의 손을 잡고 이 곳을 찾았다가 이제는 부인 캐서린 제타 존스와 함께 옵니다. 미스터 차우에 오면 고향에 온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요."
미스터 차우는 종업원들에게 철저한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객 유형을 수백가지로 세분화한 매뉴얼을 암기해 어떠한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응대하도록 훈련받는다. 미스터 차우에선 베이징오리구이 세트메뉴를 1인당 60달러(약 7만2,000원)에 맛볼 수 있다. 미스터 차우는 내년에 멕시코시티와 미국 마이애미에도 세워지게 된다.
에바와 함께 가족이민을 온 5남매 가운데 여동생 크리스 전은 로 스쿨을 졸업하고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미스터 차우의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또 다른 여동생 미셸 전은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해 미스터 차우의 영업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 김흥자씨는 베버리 힐스에서 에바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에바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잃지 않게 해준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170㎝의 키에 매력적인 미모를 지닌 에바는 "항상 내 자신을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현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왔다"면서 "미스터 차우 서울이 자리잡으면 한국에 미국의 문화 예술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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