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1의 준칙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언론의 오보 등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은 '피해자의 인격권'을 내세우며 언론의 횡포를 비판한다. 이 같은 갈등은 소송을 통해 표출되는데, 최근에는 청와대 주도로 정부까지 가세, 언론소송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중재건수는 1990년대 초반 200여건에서 지난해 511건으로 폭증했고, 소송으로 발전한 것도 서울지법의 경우만 2001년 88건에서 지난해 102건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미국은 시민들이 나서서 언론소송 분야를 개척했지만 우리나라는 재야 운동권, 시민단체, 노조 등이 보수적 언론에 대항해 '이념논쟁'차원에서 발전시킨 것이 특징이다. 언론소송은 민주화가 진행된 1980년대 후반부터 싹을 틔웠다. 대법원이 98년 '표현의 자유 보장'과 '인격권 보호'라는 두가지 가치가 충돌할 경우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공공성)일 때는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없어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상당성) 위법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놓은 이후 주요 판례들이 쏟아졌다.
90년대 초반부터 10년간은 법원이 언론을 '초법적 권력'으로 보고 통제를 강화한 시기다. 법원 관계자는 "당시 판사들은 사회적 '강자'로서 오보를 내고도 감시를 받거나 책임을 지지 않는 언론에 대해 법적인 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는 판결에 바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위자료 액수였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언론소송 위자료는 1,000만원을 넘기 힘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97년 유명 여배우의 사생활을 허위 보도한 월간지에 대해 1심에서 1억원을 인정한데 이어 98년 김대중 대통령을 친북 인사로 비방한 월간지에 대해 1억2,000만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억대 위자료 시대'가 열린 것. 언론계에서는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96년 '한약업사 사건'과 관련해 20억원의 소송을 제기, 4억원의 위자료 판결을 받아낸 것(2심에서 소취하로 집행은 안됨)에 대해 '김현철 쇼크'라고 말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전대미문의 소송액수도 액수지만 권력 핵심부에서 거액소송으로 언론보도에 대응하는 방식은 '새로운 언론통제' 또는 '겁주기 전략'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위기 의식을 느낀 언론이 자정 노력에 나서면서 법원의 입장도 서서히 변화했다. 특히 2002년 1월 대법원은 한국논단과 민변 등 시민단체 등과의 사건에서 '언론 자유'를 옹호하는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공적 관심 사안과 사적 영역의 사안간에는 (명예훼손)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며 "사적 영역에선 인격권이 우선하나 공공적·사회적 사안에 관한 경우 언론자유에 대한 제한은 완화되어야 하고,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치적 이념 등과 관련된 주장은 '상당성'을 따질 때 관대해야 한다는 입장도 담겨있다.(2000다37524,37531판결)
그러나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안상운 변호사는 "언론소송이 언론 피해자를 구제하는 소송에서 언론사를 보호하는 소송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며 "정확하게 집계할 순 없지만 피해자측의 체감 승소율은 30∼40% 대로 급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판결에 대해 "우리의 법체계나 현실에 맞지 않는 미국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공인에 대한 보도는 의도적인 악의가 없는 한 면책되어야 한다는 법논리) 이론이 대법원에 까지 스며든 결과"라며 "이런 경향이 굳어지면 피해는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징벌적 배상제'개념을 일부 도입하는 방안도 조심스레 검토되는 분위기다. 언론소송 전문가인 이광범 부장판사는 "명예훼손의 인정 범위는 엄격하게 하되, 인정될 경우 배상액을 대폭 늘린다는 것은 필연적 흐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태희 기자 taeheelee@hk.co.kr
■ 언론소송 전문변호사
언론소송은 법원이 1996년 제25민사부를 언론 전담 재판부로 지정하면서 본격적으로 틀이 잡히고 전문화하기 시작했다. 전문 변호사들도 법원 출신들이 많다. 1990년대 이전에는 사건 자체가 많지 않아 변호사들에게 환영받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10여년간의 격변기를 거치며 상황이 많이 변했다. 반론보도청구권 등 이론 분야에서는 부장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화우'의 양삼승 변호사를 꼽는다. 80년대 초부터 많은 언론 사건을 다루며 언론소송 분야 이론을 발전시켰고 언론중재위원, 선거기사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대외활동도 왕성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인 안상운 변호사는 90년대 언론사들이 '기피대상 1호'로 꼽은 변호사. 언론 분야의 전문가지만 고집스레 피해자측 대리인만 맡았다.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가 월간조선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사건 등을 맡았다.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특별검사보인 김종훈 변호사, 박형상 변호사는 주로 언론사측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한국언론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언론소송 가이드북'을 제공할 정도로 언론쪽 실무와 이론을 두루 갖췄다는 평이다.
한상호 변호사가 이끄는 김&장 언론팀도 MBC PD수첩에 대한 법원의 방영금지 가처분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활동이 활발하다. 법무법인 '정세'의 정대화 변호사, '지평'의 최승수 변호사 등도 나름대로 영역을 확보해 가고 있다.
/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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