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된 딸이 성폭행 당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해주지 않자 생업도 팽개친 채 40일 동안 직접 발로 뛰어 범인을 잡은 한 주부의 이야기는 씁쓸한 기분을 자아낸다. '민중의 지팡이'를 자임하는 경찰을 믿지 못해 한 개인이, 그것도 주부가 직접 해결하는 '사적 구제'가 이뤄지고 있으니 공권력의 권위는 실종된 것 아닌가. 특정 사건의 경우 표적 사정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일사천리로 수사하면서 민생사건은 왜 이리 차별 대우를 하는지, 실제 수사기관에 고소를 해 본 사람은 담당자의 늑장이나 무성의에 분통을 터뜨린 경우가 있을 것이다.1970년대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영화 '추방객'을 보면 주인공이 퇴근 후 강도들에게 성폭행 당하고 무참히 살해당한 아내와 딸의 시신을 보고 분노해 직접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뉴욕의 밤거리로 나서 권총으로 우범자들을 연속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우범자들이 계속 살해당한 부수 효과로 범죄가 줄어 시민들이 환영하자 시 당국은 고민 끝에 체포된 주인공을 뉴욕에서 추방시킨다는 내용인데, 두 이야기 모두 공권력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면 결국 개인이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최근 사상 최초의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 한총련의 광주 5.18 기념식장 시위사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둘러싼 전교조의 연가투쟁 등 사회 각 단체의 집단행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표출이라고 보기엔 그 도(度)가 지나치지 않나 싶다. 더욱이 국정 시스템이 마비되고 대통령이 '못해 먹겠다'는 원초적 발언까지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른 현 상황에서, 과연 공직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배트맨'이나 '쾌걸 조로'는 영화에서만 등장해야 한다. 배트맨이나 쾌걸 조로가 현실에 나타나 국민의 환영을 받는다면, 이는 국가와 정부가 없는 사회나 다름없다. 며칠 전 환경미화원을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경찰이 무려 1만2,000대의 차량을 추적해 검거했다는 기사는 '공권력의 실종'에 가뜩이나 우울했던 내게 '공권력의 참모습'으로 다가왔다.
/최 용 석 변호사 오세오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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