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안팎이 정말 시끄럽다. 국제무대에서 거의 관심 밖의 나라 몽골 이야기로 잠시 화두를 돌려본다. 지난 주 동북아 산림포럼의 나무심기행사에 참가해서 며칠간 몽골을 구경했는데, 아시아 대륙 깊숙이 쳐 박혀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의 동경과 기대가 보통이 아닌 것을 보고 놀랐다.솔롱고는 몽골어로 무지개란 의미다. 몽골인들은 한국을 가리켜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무지개 뜨는 나라'의 뜻이다.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게 된연유는 설이 분분하다. 통역을 맡은 몽골 여대생의 이름이 마침 솔롱고였다. 우리나라에서 '영희'쯤으로 흔한 여자 이름이다. 솔롱고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솔롱고스의 어원은 이렇다. "원(元)나라가 정벌한 고려에서 아름다운 공주를 왕비로 데려 오면서 왕이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불렀다." 정확한 어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 몽골인에게 솔롱고스는 아주 친근한 나라 이름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솔롱고스 열풍이 대단하다. 이 나라 환경장관은 한국형 미남이다. 그는 한국이야기를 하면서 몽골여성들이 배용준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최대 백화점 매장에서는 연속극 '겨울연가'의 배경음악이 울려 퍼진다. 우리 백화점의 1층 매장은 외국화장품 전시장이지만 몽골에서는 아모레이다. 몇 개 되지 않는 디스코테크에서 카스는 가장 인기 있는 맥주다.
한국의 힘은 바로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물결에서 느끼게 된다. 승용차, 승합차, 지프, 버스가 온통 한국산이다. 대부분 중고차로 수입된 것들이다. '의정부행' '추월금지' '과속금지' 등 한글 안내문이 그대로 붙어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실제로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헤아려 보고는 100대 중 67대가 한국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몽골인의 솔롱고스에 대한 진짜 관심은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동남아인들이 한국을 찾는 것처럼 몽골인들은 지금 솔롱고스 드림을 찾아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어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몽골인은 1만5,000∼2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모국에 보내는 송금이 몽골경제에 10%를 기여한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이렇게 높은 나라가 있을까. 인구 270만명으로 국내총생산(GDP)이 겨우 11억달러인 몽골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과장이 아닌 듯하다.
여대생 솔롱고의 아버지는 회사간부이고 어머니는 대학교수이다. 부모가 받는 공식 급여액은 20만원 정도이다. 그런데 솔롱고는 한국유학중에 서울의 식당에서 방학 아르바이트를 하여 월 100만원을 받았다. 솔롱고는 그런 '고액의 월급'이 아니라 서울의 화려함 때문에 한국에서 더 공부하고 또 서울에 살기를 원했다. 누군가 솔롱고에게 "한국 사람들은 뉴질랜드를 보고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했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말했다. 왜 아름다운 초원을 두고 지옥에서 살려고 하느냐?"라고 농담했다. 솔롱고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몽골은 재미없는 지옥이에요."
몽골이 시장 경제를 도입한지가 10년이다. 아직 체제가 정착되지 않아 사회경제적으로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국가가 일자리를 주던 체제가 사라지면서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률은 20%를 넘어섰고 대학 졸업자 4명 중 3명이 실업자이다. 도시변두리는 우후죽순처럼 빈민촌이 확대되고 있다. 몽골국립박물관에는 쿠빌라이 칸 시대에 원나라가 지배했던 땅을 그린 지도가 걸려있다. 설명에 '한반도에서 불가리아 평원에 걸친 제국'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은 불안한 세계화의 막차에 타려 하고 있다.
몽골에서 우리는 민족의 흥망성쇠를 대조적으로 보게 된다. 이제 한국은 몽골보다 경제규모가 400배나 더 큰 솔롱고스가 되었다. 우리는 대단한 국가이다. 정복의 시대가 아니라 협력의 시대에 몽골인에게 관심을 가질 만하다.
김 수 종 논설위원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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