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이 세상에서 확실히 존재하는 세 가지는 신(神)과 어리석은 인간, 그리고 웃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에 맞장구를 쳤던 미국의 유명만화작가 자니 하트(Johnny Hart·72)는 "앞의 두 가지야 나로서도 어쩔 수 없지만, 웃음만은 내가 확실히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장담했다. 하트는 1958년에 선사시대 조상들의 유쾌한 일상을 4칸 띠(帶) 만화로 창작한 '원시로 돌아가다'(Back to the B.C)를 창작한 주인공. 이 만화는 지금도 미국의 작가 신디케이트를 통해 배급돼 세계 1,300여 신문에 연재되고 있다.미국의 '원시로 돌아가다'에 필적할 만한 만화가 우리에게도 있다. 구불구불한 선화(線畵)체 그림에 에로틱한 분위기로 원시 조상의 유쾌한 일상을 보여준 박수동(朴水銅·62)선생의 '고인돌'이 그것이다. 고인돌은 성인 주간잡지의 대명사였던 '선데이 서울'(폐간) 연재 만화였다. 1974년부터 91년까지 17년 동안 연재됐다.
'고인돌'의 분위기는 하트의 '원시로 돌아가다'와 많이 닮았다. 그러나 성냥개비에다 먹물을 찍어 그리는 고인돌 그림체는 자니 하트의 꽉 짜인 듯한 로트링 펜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고인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매력은 글씨체다. 허투루 그려 제낀 듯한 그림이지만 꽉 짜인 구도, 그에 걸맞은 휘청휘청 끊어질 듯 흘러내리는 글씨체. 이 글씨는 그림과 묘한 앙상블을 이루면서 고인돌 만화를 더욱 감칠맛 나게 했다. '고인돌'이 처음 발표됐을 당시 많은 독자는 "이런 만화도 있을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기존 만화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미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실질적 의미에서 한국 성인만화의 첫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분위기는 만화매체의 질펀한 성적(性的) 담론을 용납하지 않았으나 고인돌은 고루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깨버렸다. 고인돌 만화에는 남성 등장인물 들이 여성그림을 그려놓은 바위를 포옹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한 참 뒤 바위에는 구멍이 송송 뚫리고 만다. 그런가 하면, 남녀가 나란히 수영을 하다가 여자만 유독 물 속에 잠기고 마는데 그 이유는 "여자에게는 '물새는 구멍'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하나같이 질펀한 Y담(談)이지만 만화적 해학과 위트로 말미암아 비난보다는 오히려 많은 찬사를 받았다. 고인돌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을 때 문학평론가 이광한씨는 "박수동 만화의 에로티시즘은 우리 선인들이 간직했던 해학과 유머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유머가 박수동 만화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는 서문을 썼다.
박 선생은 60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 5년간 경남 밀양에서 교직생활을 했지만 교육신문 및 잡지기자로 전직하면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고인돌 외에도 70년대 중반부터 20여년간 여성잡지에 연재한 '와이프행진곡', 어린이 만화 '번데기 야구단'등 숱한 인기만화를 냈다. 지금도 사보(社報) 편집자들에게는 특 A급 만화가이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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