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인터넷으로 미리 본다"외국과 시차를 두고 개봉되는 화제 영화의 리뷰가 국내에서 개봉되기도 전에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는 것은 세 경우 중의 하나이다. 우리보다 개봉이 빠른 외국에서 영화를 보았거나, 국내 시사회를 통해서, 아니면 인터넷으로 내려 받아 보는 경우다.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국내 개봉에 앞서 인터넷에 오른 이런 저런 리뷰도 마찬가지다.
12일 오후 2시 서울극장에서는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된 이 영화의 기자 시사회가 열렸다.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 코리아가 영화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가방 반입을 금지 했고, 영화 상영 전 스크린에 불법 유출에 대한 강력한 경고문이 떴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미국 개봉조차 앞서 이 영화의 해적판이 돌아 다녔다. 영상이 조악하고, 자막이 없어 외국에서 띄운 동영상인 것으로 국내 배급사는 판단하고 있지만, 앞으로 제대로 된 동영상이 뜰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배급사는 국내에서 두 차례의 시사회만을 가졌을 뿐이지만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된 15일 이후 인터넷에는 상당수의 리뷰가 올랐다. 미국에서 영화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매트릭스2―리로디드'의 개봉 하루 전인 14일 아침에 인터넷에 해적판이 떴다. 온라인 매체인 Cnet은 "파일 교환 전용 사이트에 감상평이 올라왔으며, 인터넷에 뜬 화상은 어둡고 거칠기는 하지만 진품"이라고 확인했다. 와레즈(Warez)나 P2P(Peer to Peer) 등 '소리바다' 식의 파일 공유 서비스를 통해 네티즌들이 개봉 전의 영화를 미리 보고 있는 것. 700MB∼1GB 크기의 대용량 영화 파일은 1시간 정도면 압축 파일인 디빅스(DivX)의 도움으로 인터넷을 타고 흘러갈 수 있다.
직배 영화사들은 인터넷 불법 복제 영화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의 배급사가 인터넷 유포 용의자를 고소했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도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의 남윤숙 마케팅 부장은 "최근 P2P를 통해 불법 복제가 돌아다니고 있어 불법복제 '애니 매트릭스' 10건과 '매트릭스 2' 7건에 대해 해당 네티즌에 경고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50만명의 잠재적 불법 복제자?
그러나 파일을 공유한 네티즌을 일일이 찾아 내 경고문을 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일구리' 'eDonkey' 등 P2P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 수는 최소한 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요즘은 굵직한 할리우드 영화 '시카고' '10일 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등을 빼면 한국 영화의 불법 복제품이 더 인기가 높지만 대부분 속수무책이다. '살인의 추억'을 제작한 싸이더스 기획실 손복희씨는 "온전한 작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오류도 많다고 들었다"며 "아직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솔직히 좋은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선생 김봉두' '오! 해피데이' '살인의 추억' 등 국내 인기 영화가 모두 개봉 전에 인터넷에 나돌았다. 반면 '지구를 지켜라' '질투는 나의 힘' 등 작품성 짙은 마니아용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적판은 시사회 효과?
불법 복제 영화에 대한 네티즌의 입장은 조금씩 서로 다르다. '매트릭스 2'를 인터넷으로 봤다는 한 네티즌은 "정상적인 소스를 복제한 게 아니라 캠판(캠코더로 스크린을 찍은 버전)으로, 자막도 없었고 이제까지 본 것 가운데 화질이 최악이었다"며 "영화관에서 다시 볼 것"이라고 말했다. 네티즌 김진명(29)씨는 "공유와 교환을 통한 친밀감 나누기, 또는 국내에 아직 안 들어온 영화에 대한 호기심 차원 때문에 보는 것일 뿐"이라며 "화질 음질 등이 떨어져 인터넷으로 영화를 본 사람도 다시 영화관에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홍보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질이 조악한 해적판이 오히려 영화 시사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해적판을 만드는 일부 네티즌은 외국 영화에 한글 자막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띄우며 '노력 봉사'하는 반면, 포르노 사이트처럼 돈을 받고 파는 상거래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도 큰 특성이다. "캠코더 촬영 및 제작사 내부의 비디오 테이프 유출 등도 모두 장삿속이라기보다는 다른사람보다 조금 먼저 봤다는 '우월감'과 남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원이 4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 DVD 동호회인 DP(디지털 프라임)는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영화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 받은 적이 있느냐는 설문에 1,442명 가운데 85%인 1,230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불법 복제 DVD 또는 복제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 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아직 출시되지 않아서'(31%) '수집을 위해'(25%) '무료'(24%) 순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사의 생각도 비슷하다. "불법 복제판을 보았다고 해도 영화를 관람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어 실질적인 손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은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나 완성도 높은 몇몇 국내 영화의 경우이지, 비교적 적은 규모의 영화는 불법 복제의 피해가 큰 게 사실이다. 직장인 김모(27·광고대행사)씨는 "국내 미개봉작인 '케이트와 레오폴드'를 캠버전으로 보았는데, 번역이 다소 어설펐지만 화질은 괜찮았다"며 "캠버전을 자주 보는 사람이 극장도 자주 찾는다"며 전혀 '죄의식'을 표현하지 않았다.
김씨 경우처럼 자신을 "영화 애호가"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이 캠버전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우리나라가 비디오테이프와 DVD 불법 복제 천국에 이어 캠버전 천국이 될 날도 멀지 않은 것은 앞으로 우리 영화계의 큰 짐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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