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던 젊은 날의 각오는 항상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주먹 한방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년의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들의 현 주소는 어디일까. 사각의 링을 떠난 이들은 링보다 더 험한 세파 속에서 때론 좌절하고 때론 성취감을 맛보며 '평범'과 '비범' 사이를 오가며 제2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글러브와 샌드백만 알고 살아온 까닭에 어처구니없는 꼬임에 전재산을 날리는 등 생활고를 겪은 이도 있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며 이를 악물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프로복싱의 쇠퇴를 아쉬워 하며 "나 보다 더 멋진 진짜 챔프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등 몸과 마음이 여전히 복싱 곁을 떠나지 못한다.불혹을 넘긴 '싸움꾼' 박종팔
아시아 역대 최중량급인 슈퍼미들급(76.2㎏ 이상) 세계 챔프(IBF·WBA)를 지낸 박종팔(46)은 이종격투기 전사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20대 '청년'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격렬한 이종격투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복싱은 물론 레슬링과 유도 태권도 가라데 등 온갖 기술을 망라한 '종합무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지 포먼도 40대에 사각의 링에 복귀한 적이 있다"며 "이왕 이면 좀 더 화끈한 싸움에서 승부를 겨루고 싶다"고 했다. 7월17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15년만에 다시 링에 오르는 박종팔의 이종격투기 데뷔전 상대는 아마추어 시절 두번의 패배를 안긴 동갑내기 이효필이어서 '26년만의 설욕'도 관심을 끈다. 89년말 은퇴한 뒤 복싱 체육관을 차렸던 박종팔은 96년부터 서울 역삼동에서 식음료점 '챔프'를 운영하는 등 경영수완도 만만치 않다.
설렁탕집 사장님 유명우
주니어 플라이급 최다 방어(17차) 기록 보유자인 '들소' 유명우(39)는 설렁탕집 사장이 됐다. 1985년 12월 WBA주니어 플라이급타이틀 챔피언에 오른 뒤 92년 타이틀을 자진 반납하며 복싱계를 떠난 유명우는 저돌적 인파이터 출신답게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2000년 경기 수원시 조원동에서 '유명우 설렁탕' 을 연 그는 "93년 집안 어른의 소개로 예식업에 뛰어들면서 조금씩 사업에 눈을 뜨게 됐다"며 "전국에 설렁탕 체인점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 독산동에서 '유명우 체육교실' 을 운영중인 그는 "사각의 링이 지옥처럼 여겨진 때도 있었다"면서도 "직접 내 손으로 세계 챔프를 만들어 보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거친풍파 헤친 문성길
한국 유일의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문성길(43)은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복싱으로 되돌아왔다. '미국에 핵주먹 타이슨이 있다면 한국엔 돌주먹 문성길이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철권을 자랑한 문성길 역시 '주업'은 식당이다.
88년 WBA 밴텀급과 90년 WBC슈퍼플라이급 두 체급을 석권한 뒤 대전료 2억원을 사기당하자 93년 은퇴한 문성길은 모 제약회사 이사대우로 새출발 했으나 97년 사표를 던지고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철판 볶음집을 냈다.
"선수로서 경험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봐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는 그는 2000년부터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문성길 복싱교실"을 운영중이다. 문성길은 "올해부터 공군사관학교 초빙으로 매주 두 차례 복싱강의를 나가는 교수님"이라면서도 "부상 후유증으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남자 김광선
한국아마 복싱의 간판스타 김광선(41)은 '에어로빅 복싱'의 전도사가 됐다. '라이터 돌'이라는 별명답게 158㎝ 단신이면서도 쉴새없이 펀치를 날려 상대를 쓰러뜨리는 화끈한 플레이를 자랑했지만, 과격한 동작을 배제하고 복싱기술을 최대한 이용한 에어로빅 복싱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연히 몸매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운영중인 '김광선 체육관' 에는 단순히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들렀다가 복싱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여성이 4,000명을 넘는다.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92년 프로에 데뷔, 이듬해 세계타이틀 도전에 나섰으나 패배했던 김광선은 KBS 스카이 방송 복싱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7년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복싱 강의도 맡고 있다.
해설도 잘하는 홍수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홍수환(54)은 한국 최초의 2체급 석권과 4전5기의 신화를 일구며 복싱 중흥에 불을 댕긴 주인공답게 팬들의 뇌리에 오래 머물고 있다. 74년 WBA 밴텀급 챔피언과 77년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에 오른 홍수환은 80년 은퇴, 서울 화곡동에서 복싱체육관을 열고 후배양성에 나섰다.
이후 복싱 트레이너로 활동한 홍수환은 장정구, 김철호 등을 세계챔프로 등극 시켰다. 82년 미국 이민길에 올라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프로모터로 활동하다 92년에 귀국, 기업체 강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경인방송 복싱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가수 옥희 사이에서 낳은 아들 대니 홍도 미국에서 프로복서로 활동, 대를 이은 '부자챔프'를 꿈꾸고 있다.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1960∼80년대 복싱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가로세로 21.8m의 사각의 링은 꿈과 희망의 무대였고 헝그리 복서들은 돈과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링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한국인 첫 세계 챔피언은 66년 타이틀을 차지한 김기수. 이후 지금까지 총 49명의 챔피언이 탄생했다. 이들 가운데 유명우가 17차 방어전을 성공, 최다방어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장정구가 15차 방어로 뒤를 잇고 있다. 또 홍수환, 박종팔, 문성길, 최희용은 두체급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일간 첫 세계 타이틀전은 75년 유제두―와지마 고이치전. 유제두는 이 경기에서 7회KO승 거두고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염동균,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가 차례로 정상에 오르며 70년대 프로복싱 무대를 주름잡았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복싱의 인기는 더욱 빛을 발했다. 80년 2월 김태식이 장충체육관에서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를 상대로 통쾌한 2회 KO승을 거두며 정상에 오르는 장면은 아직도 올드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정도. 김태식을 시작으로 80년대엔 무려 13명의 챔피언이 탄생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90년대 접어 들면서 프로야구, 축구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한국 프로복싱은 99년 백종권 이후 더 이상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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