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잡지의 틀을 벗어버리고 본격적인 전문 서평지로 새로 선보일 겁니다." 5년 전 서강대 교수를 그만 두고 철학 사숙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우(44) 철학아카데미 원장은 요즘 강의말고 공들이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2000년 11월에 격월간으로 창간했다가 재정이 어려워 7호까지 내고 중단한 학술 서평지 '아카필로'(ACAPHILO·'Academy of Philosophy'를 줄인 말)의 복간 작업이다.아카필로는 창간 당시에도 학술 서평지를 표방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 구성은 이름에 미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서평 전문지니까 서평이 내용의 대부분이어야 마땅하지만 창간호부터 4호까지 실린 서평은 호마다 2편에 불과했다. 다른 철학 전문지처럼 이런저런 학술 동향이나 소식 기사가 200쪽에 못 미치는 책의 나머지를 채웠다.
하지만 새로 선보일 아카필로 8호는 편제가 다르다. 격월간은 역시 부담스러워 반년으로 발행 주기를 바꾸는 대신 분량을 300여 쪽으로 늘리고 전체 내용을 철학서에 대한 본격 서평으로 꾸몄다. 이 원장은 "예전보다 성격이 뚜렷해 마음에 든다"고 수수하게 말했지만 새로 나오는 아카필로는 그러니까 명실상부한 국내 첫 학술 전문 서평지가 되는 셈이다.
이번 호는 특집 대담 집중 서평 해외 서평 학술 정보로 꾸며지며, 학술 정보를 제외한 모든 난이 사실상 서평이다. 이번 호 특집은 '노마디즘과 꼬뮤니즘'. 이 원장이 직접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천의 고원'과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제국'에 대해 썼다. 분량만 200자 원고지로 400장이다.
대담 저자는 '생성의 철학, 왕선산'을 쓴 이규성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전호근 성균관대 강사가 만나 글쓴이의 입을 통해 왕부지 기 철학의 면모를 소개한다.
각각 원고지 100장인 집중 서평 대상은 정세근 충북대 교수의 '노장철학'(서평자 이종성 충남대 교수), 진래 베이징대 교수의 '주희의 철학'(안은수 성균관대 강사),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이승종 연세대 교수의 '비트겐슈타인이 살아있다면―논리철학적 탐구'(박정일 세종대 교수)이다. 번역서의 경우 번역의 잘잘못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해외 신간은 미셸 푸코, 앙리 베르그송의 책 등 4권이다.
"책 소개가 아니라 철학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지향할 것"이라는 이 원장은 아카필로가 앞으로 "일본 학술지 '현대사상' 같은 권위를 갖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사상과 손잡고 정례 한일 지식인 교류를 해봤으면 하는 구상으로, 철학아카데미 강의에다 매주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경남 함양의 녹색대학 강의로 바쁜 시간을 쪼개 일본어 회화 공부도 열심이다. 아카필로 복간호는 늦어도 6월 초에 서점에 나온다.
/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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