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51)씨의 그림에는 오름과 바람, 제주의 산하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을 푸는 방법은 오직 자연에 다가가는 것 뿐이었다. 그 앞에 서면 막혔던 심기의 흐름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라산의 적송, 물매화 언덕을 어루만지거나 격렬하게 스쳐가는 제주의 바닷바람은 보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공명되는 풍경이다.강씨가 21일부터 6월11일까지 학고재 화랑에서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강씨는 1990년대 초 고향 제주로 귀향했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자연의 언저리를 배회했다. 하지만 오랜 헤맴 끝에 비로소 섬에 정주처를 잡아 붙박이 삶을 시작했다."
당초 그의 작업은 자연이 아니라 시대에서 출발했다. 80년대 초 왜곡된 현실에 대한 발언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제주의 역사와 민중의 삶이 그의 현실 비판 작업의 토대가 됐음은 물론이다. '제주민중항쟁사' '4·3 50주년 기념― 동백꽃 지다' 전 등의 전시회를 잇달아 열었다.
다시 정착한 제주에서 그는 스스로 격렬한 몸짓을 하는 대신 바람에 몸을 맡겼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30여 점의 작품은 하나 같이 바람을 타고 있다. 새로 정착한 마을에서 바라본 한라산을 그린 '관산대'와 맑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화면 가득 담은 '미리내',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으로 상정하고 그린 풍경 '영주산' 등에는 언제나 바람이 스치고 있다. 그래서 막상 제주의 풍경이면서도 그것은 어떤 마음 속의 풍경이고 세월의 풍경이다. "자연은 자신의 리듬에 우리를 공명시킨다. 바닷바람이 스치는 섬땅의 자연은 그리하여 내 마음의 풍경이 되어간다"고 작가는 말한다. (02) 720-1524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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