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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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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비 때문에 취재를 망치고 대신 휴식을 즐겼다고 말씀 드린 적이있습니다. 그런데 2주 연속으로 취재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비때문이 아니라 비가 남긴 후유증 때문입니다. 일은 공쳤지만 쉬는 일정은아니었습니다.강원 산골의 오지마을 취재를 계획했습니다.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세 곳을 찍었습니다. 어디 어디라고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해당 주민들이이 편지를 읽고나면 낙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지 취재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겼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식량에 텐트까지 차 트렁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도 전기도 들어오지않는,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챙겼습니다. 짙어지고 있는 자연의 색깔도 상상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준비 많이 했죠?

그러나 현지의 사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분명 찻길이 있다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전무퇴. 차를 놓고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바라본산천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오지로 통하는 길은 거의 예외 없이계곡물을 타고 나 있습니다. 물가가 아니라 아예 산 중턱에 뿌리째 뽑힌나무가 누워있었습니다. 작은 다리였을 법한 시멘트 구조물이 개울가에 박혀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서너 가구가 산다고 했는데 단 한 분이 남아있습니다. 마을은 거의 바그다드였습니다. 지난 해 루사가 남긴 상처랍니다.

아직 복구가 안된 것이 아니라, 아예 복구를 시작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봤습니다.

여심(旅心)을 자극하는 풍경이 아닙니다. 수해 지역의 보도 사진이었습니다. 완전히 헛걸음이었습니다. 혹시 했지만 다른 2, 3 후보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도시의 피해도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지야….’ 애써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래도 취재는 해야 하는 법. 아예 국토를 가로질러 서해로 갔습니다. 그리고 심포의 바닷가에 섰습니다. 넓은 갯벌.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면 사라질 갯벌입니다. 남아도는쌀을 더 남아돌게 하려고 땅을 넓히는 공사입니다.

마음은 오지에서보다 더 쓰렸습니다. 지금도 수천대의 덤프트럭과 수만명의 건설인력이 바다를 메우고 있을 것입니다. 순간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으면 루사의 자취는 벌써 없어졌을텐데.’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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