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화단의 대표적 작가 일랑(一浪) 이종상(李鍾祥·65·사진) 화백이 21일부터 6월17일까지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지 40년 만인 8월에 모교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는 그는 이번 전시회가 "신인으로 화단에 데뷔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출품작은 20여 년 간 그가 그려온 '원형상(源形象)' 시리즈 60여 점이다. 1980년대 초부터 그는 원형상에 매달려왔다. 이 화백이 한국 화단에 제기한 이슈, 현대 한국 회화의 흐름에 미친 영향은 한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게 방대한 것이지만 원형상의 개념은 세계에 대한 그의 총체적 인식을 드러내는 요체다. '천지(天地)' '구원(救援)' '묵고(默考)' '영생(永生)' 등의 부제를 단 이 연작에서 이 화백은 세계 본래의 모습을 탐구한다. 어떤 추상적 기호나 상징, 상형문자 같은 선과 획이 단순하게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필법은 호방한 활력이 넘친다. 화면의 여백은 온전하게 보는 이의 관조를 끌어낸다. 마치 고대 벽화를 보는 듯하다. 사실 그야말로 한국 미술의 원형은 벽화, 특히 고구려 벽화에 있음을 선구적으로 발견한 작가였다.
고구려 벽화가 고려시대를 지나며 사라졌고, 고려 불화는 조선시대 수묵화에 밀려 자취를 감췄으며, 조선의 미술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왜곡됐다. 해방 이후 한국화는 서양화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 일랑 예술의 주제는 작품에서나 이론에서나 한국적 회화의 모색이었다. 그는 우리 그림을 한국화라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이 담긴 그림은 회화이고 근현대에 도입된 서양의 그림들은 서양화일 뿐이다. 한국적 전통, 정신이 담긴 그림의 모색에서 그는 장지화, 닥지화, 동유화(銅釉畵)의 기법을 되살리고 개척했다.
쉽게 흉내내기 힘든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벽화를 선보임으로써 일랑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특히 동유화는 고구려 벽화의 기법을 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그의 시도이다. 동유화는 채색의 영구성을 모색한 끝에 그가 발견한 기법이다. "벽화의 생명은 접착제"라고 말하는 그는 흔히 말하는 벽화의 변색은 채색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져서가 아니라 접착력이 떨어져서 나타나는 채색의 탈락 현상임을 발견했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작품에는 장지화, 수묵화, 닥지화도 있지만 특히 동유화에 힘을 쏟은 흔적이 역력하다.
18회 째인 그의 개인전은 서울 인사동의 전통 있는 선화랑의 재개관 기념전이기도 하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300여 평 넓은 전시 면적을 그의 역동적 작품으로 제일 먼저 채웠다. 일랑이 '진경(眞景)'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산수를 추구하고 독도문화운동을 벌이던 시절인 1977년 개관한 이 화랑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전시 문의 (02) 734-0458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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