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둘러싸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의 방미 활동에 대해 야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여당 의원들은 비판한다. 여야의 이런 역할혼란에 국민들은 헷갈린다. 언론도 노 정부에 우호적이던 진보성향 매체들이 태도를 바꾸었다.그런 지지기반의 자리바꿈은 일반 국민 사이에서 더욱 현저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텃밭으로 여겨온 네티즌들의 반기가 그것이다. 대표적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뉴스에는 '노짱 맞아?' 식의 비아냥이 홍수를 이루었다.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은 한나라당 지지자가 노 대통령 쪽으로 옮아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끌려 들어간 것 아니냐고 웅성거리고 있다. 독립운동 세대, 군사쿠데타 집단, 3김 정치 이후 제4세대 정당정치의 특성은 인물과 정권 자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과 정치노선이 틀리면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 선진적 정치문화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외교는 북한을 때리면서 한미동맹을 강조한 것으로 정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화에 응해 19일 남북경협추진위가 평양에서 열리지 않았느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은 그들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그렇게 나오게 되어 있다고 남북관계를 낙관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지금의 남북대화는 지난 김대중 정부가 깔아놓은 펀더멘털 위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약속된 것들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남북대화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경추위의 의제들인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개성공단 착공, 금강산 관광의 재개, 임진강 수해방지를 위한 합동조사 등이 그것을 말해 준다.
이런 차원에서도 정부가 이번에 북한에 약속한 비료와 쌀을 보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기본 수요로 볼 때 연간 200여만톤의 식량과 70여만톤의 비료가 외부에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북쪽 주민들에게 생존권적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인도주의다.
노 대통령의 방미활동에 대한 비판은 주로 정상회담장 바깥의 발언 때문이다. 문서로 된 공동성명은 양국 외교당국과 전문가들이 사전 협의해 만든 작품이어서 비교적 균형잡힌 내용이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악화될 경우엔 '추가적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추가적 조치를 설명하면서 군사행동도 용인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그것도 미국의 대표적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더 나아가 북한을 믿을 수 없으며 그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부분이 가장 민감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이 시도하는 핵 협상의 궁극적 요구가 바로 체제안전 보장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핵무기 위협때문에 핵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한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체제안전 협상 자체를 묵살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크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국군 파병을 결정하면서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반전 평화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섰을 것으로 믿었다. 국정책임자와 일반 정치인의 행동규범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핵 해결의 수단으로 군사행동까지도 수용하겠다고 한다면 이라크전 파병 명분을 다시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갈수록 부시 행정부에 끌려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것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표출된 국민 다수의사에 어긋난다.
김 재 홍 경기대 교수·남북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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