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후배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했더니, 놀란 표정이다. 함께 한 적도 별로 없는데 그걸 다 기억하느냐고 한다. 중요한 일도 잊고 지나기 일쑤니, 10여년 전 한번 자리를 같이 한 그 날을 기억하는 것이 내가 봐도 의아하다.그런데 그 날 뿐 아니라 유독 5월의 날들은 모두 그렇게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느 해 5월 10일에 한 선배가 민자당을 해체하라며 당사 점거농성을 시작했고, 14일에는 유달리 손가락이 길었던 친구가 갑작스레 학교를 떠나더니, 25일에는 선한 표정의 한 여학생이 시위 도중 사망했다고 했다.
아카시아 향기가 최루탄과 묘하게 섞여 있던 길을 거슬러 기숙사로 돌아가던 어느 밤길의 냄새까지 생생하다. 그 때 내 감성과 기억의 시계가 화들짝 깨어나서 감각의 촉수를 곧추세우고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나 보다.
5월이 내 마음을 깨어 있게 만드는 그 중심에는 광주가 있다. 독일 언론인이 찍었다는 그 비디오를 처음 본 그 날부터, 봄날을 그저 즐길 수 없게, 무뎌질 수 없게,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잘못한 것 같이 만드는 그 무엇. 도서관에 앉아 보냈던 몇 년 동안도 5월이면, 그렇게 예민하고 불편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해마다 이런 기억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이야기들이 새로 들려온다. 존경하던 시인과 젊은 정치인들이 하필 이 때 그곳 유흥주점에서 술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확인된 민간인 암매장 이야기가, 무뎌진 마음을 다시 깨우곤 했다.
올해의 기념식과 한총련 시위도 기억을 새로이 하는 그런 일이 될 것 같다.
한총련 합법화를 바라는 나로서는, 애초 경찰이 예상하였다는 '피켓 시위' 정도에 그치고 기념식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응에는 아쉬움을 넘어선 답답함을, 언론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낀다. 한총련이 직접 밝혔듯이, 기념식 자체의 방해가 '진정으로 목적한 것'이 아니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가하는 좋은 뜻을 모르지 않고, 그들 스스로 이 날을 되새기고 추모하기 위해 광주로 향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도 나처럼 마음이 많이 예민해져, 광주의 비극을 승인한 바로 그 나라에서 우리 대통령이 한 말과 행동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북 핵 위기의 심각함을 모르는 바 아니고, 이후 대북정책에서 구체적 내용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후보 시절 미국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랑스레 여기거나 적어도 안도했고, 그래서 조금 다른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그러지 말라고 한 것이 '난동'인가. 나라의 기강이 그렇게 세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 다음날로, 의도적으로 했던 일이 아니라고, 죄송하다고 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광주 학살 주범들의 정권을 찬양했던 언론들이 감히 '광주 민주화 영령'을 말하거나 '민주화 성지 무법화'라며 "난동자들을 처벌하고 합법화를 재검토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야 그렇다 치자. 그러나 정부 인사들이 잇달아 엄단을 명하고 나아가 합법화의 걸림돌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럽다. 혹시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합법화 해주려고 했더니 자숙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나온다"며 분해하고 있다면 더욱 큰일이다. 한총련 합법화가 정부가 한총련을 잘 봐줘서, 또는 한총련이 정부에 잘 보인다고 되는 일인가.
정치인들은 누가 더 광주의 정통을 계승한 건지 입씨름을 하고, 29만원밖에 없다던 전직 대통령 가족이 250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접하는 5월 광주 이야기는 이렇게 또 다시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김 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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