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부산 남구 용당동 신선대 부두로 향하는 도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화물연대 부산지부가 파업철회를 선언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트레일러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었고 차량은 정체로 허덕댔다. "그 동안 길 안 막힌 것 하나는 좋더만…."택시기사의 불평도 이어졌다. 부두 내 컨테이너 장치장(CY)은 거대한 크레인들의 기계음으로 뒤덮였다. 5만톤급 화물선 4대가 동시에 정박할 수 있다는 부두의 선석(船席)도 장관이었다. 전봇대 굵기 와이어로 몸을 지탱한 화물선에선 컨테이너 하역 작업이 한창이었다. 모든 것이 컴퓨터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조종된다. 3,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 시설이라고 했다. 세계 컨테이너 물류 3위의 부산항, 그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 신선대 부두였다. 감탄사만 내뱉고 있자니 부두 관계자가 한마디 했다. "시설에 돈 들이고 현대화한 것은 좋은데, 물류가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소프트웨어가 옛날 그대로다 보니 이런 문제(화물연대의 파업)가 터져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시설만 좋으면 뭐합니까. 일주일동안 꼼짝없이 마비돼버리는걸요."
"우리도 우리 힘에 놀랐다"
부두 주차장으로 돌아 나오자 트레일러들이 도열해 있다. 전날 승리감에 도취됐던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일주일간의 손실을 벌충하기 위해서인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삼삼오오 둘러 모여 무용담을 되새김질하다가도 휴대폰으로 주문 받기가 무섭게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제대로 말 붙이기조차 힘들다. 하루가 지나서 였을까. 전날의 득의 가득한 얼굴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냉정을 되찾았다고도 표현했다.
"정부가 지입제를 없애겠다지만 번호판 장사해먹는 운수 회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요. 자기 밥줄 달린 문젠데. 그 사람들이 로비를 해대면 사태가 어떻게 될 지 또 몰라."
"잔뜩 얻어낸 것처럼 말들만 무성한데 실제 얻어낸 것은 아무 것도 없어."둘러 모인 조합원들의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한 40대 조합원이 정리한다. "첫술에 배부르겠어. 안되면 한번 더 해야지."
서울에서 화물을 싣고 내려왔다는 한 조합원의 자평이 인상 깊다. "그나마 우리를 모래알로 여기던 정부한테 단결된 모습을 보여준 게 큰 수확이야. 우리도 우리 힘에 놀랐다니까."지역 분회장이라는 한 차주는 "파업 승리 이후 화물연대에 너도 나도 가입하려고 한다"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차에 오렌지색 화물연대 스티커를 안달면 왕따 당한다는 말도 있어요.."
"불과 몇 주전만 해도 운수 회사며 화주들이 화물연대 스티커를 붙인 차들은 (화물을 실으러)들어오지도 못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이제 우리 눈치를 보니 그것만도 엄청난 수확이죠." "일감 따기도 힘들어"
아침 일찍 서울에서 화물을 싣고 내려왔다는 화물연대 조합원 이모(41)씨의 트레일러에 올랐다. 그는 오후에 다시 짐을 받아 서울 쪽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파업이 끝나고 다시 일 나오면서 싸온 것이라며 쇼핑백에 담긴 옷가지와 양말 따위를 보여줬다. "서울 부산을 왔다 갔다 하는 차주들은 집에는 보통 일주일에 한번 들어가요. 파업 덕에 식구들하고 저녁은 원 없이 먹어봤네요"라고 했다.
번듯한 호텔 직원으로 근무하다 90년대 초반 친구 따라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만해도 월급쟁이보다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90년대 중반 들어 화물차가 엄청 늘어났어요. 수급이 안 맞으니 일 받기도 힘들고…."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수급 불균형이었다.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수급불균형을 해소할 어떤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고 했다.
오후4시. 알선업체를 통해 겨우 주문을 받았다. 경기 양주군까지 갈 2TEU(20피트 짜리 컨테이너 1개)짜리 화물이었다. 차주에겐 알선업체와 얼마나 안면을 터놓느냐가 관건이다. 30만원 가량의 운송료는 두 달 뒤 입금될 터였다. 화주(貨主)가 원래 지급하는 운송료가 얼마인지는 모른다. 화주로부터 몇 단계를 거쳐 일을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 원성의 대상 '다단계'다. "중간의 알선쟁이들은 전화질만 하고선 앉아서 돈을 번다"고 했다.
컨테이너를 싣기 위해 부산항 5부두로 들어섰다. 그 동안 물량이 많이 쌓여있어 작업이 순조롭지 못했다. 한참 기다리고서야 화물이 실린다. 부두를 빠져 나온 시각은 오후 6시. 정체를 피해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섰다. 톨게이트서 '빨래판'이라 불리는 저울을 통과했다. "화주가 신고한 것보다 많이 싣기 일쑤여서 여기만 들어서면 어김없이 땀이 난다"고 했다. 한참을 달리니 어스름해진다.
서글픈 '길바닥 인생'
차가 사무실이고 잠자리다. 그러다 보니 차 안에 휴대폰 2대에 TRS(주파수공용통신), 소형 TV 까지 갖췄다. TRS를 통해 동료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계속 울린다. 제각각 어딘가의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그들 끼리를 맺어주는 통로다. 원래 교통정보가 주종이었지만 요즘엔 뜨거운 토론의 창구다. "지도부를 구속시키면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 "파업기간 동안 몰래 일한 간첩 같은 차주들은 손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 한 조합원의 묵직한 목소리가 결론처럼 TRS를 울린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투쟁."
차는 심하게 흔들린다. "허리띠가 뒷부분부터 날큰날큰해져요. 사람들이 보기엔 과격해 보여도 하체부실하고, 허리 성한 이가 별로 없어요."이씨가 웃었다.
신탄진 휴게소에 들른 시각이 밤11시. 대부분의 차주들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대놓고 운전석 뒷자리에 쪼그리고 잔다. 이씨는 휴게소 '개구멍'을 통해 식당을 찾아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휴게소 입장에선 화물차가 마뜩치 않다. 시비가 일기 일쑤다. '길바닥 인생'이라는 자조감은 이때 더욱 심해진다.
파업기간 동안 지입차주들의 수입은 논란거리가 됐었다. "한 달에 100만원을 못버는 이들이 있는 반면 고급승용차를 몰 정도로 수입이 많은 이도 있다"는 얘기가 돌았었다. "차를 여러 대 가지고 고수입을 올리는 극소수 차주는 있다. 하지만 길바닥에서 자고 항상 사고 위험에 놓여있으면서도 대부분은 봉급쟁이 수준이다. 돈 잘벌면 왜 난리치겠나."차주들의 항변이었다.
이씨가 밤을 달려 의정부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2시. 갓길에 차를 대고 자명종을 맞추고 늦은 잠을 청했다. 공장이 문 여는 시각에 맞춰 화물을 내려줘야 한다.
'동북아 물류 중추'의 장려한 구호와 수백 억원씩 들어간 거창한 항만 설비, 물류 입국이라는 화려한 외양 속에선 전근대적 시스템이 덜거덕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부산=글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사진 이성덕기자
■피말린 부산항
화물연대의 파업기간 동안 누구보다 가슴 졸인 이들은 부두 운영사 관계자들.
신선대 부두를 운영하는 (주)신선대컨테이너터미날 임성택 팀장은 "타결이 하루만 늦었어도 부두운영이 완전 마비에 빠질 뻔 했다"고 말했다. 배들은 한번 신뢰가 떨어진 항구는 찾지 않는다. 허브항과 주변항의 차이는 하늘과 땅. 허브항이 육상운송에서 고속 터미널격이라면 주변항은 버스 정류소다. 하지만 장기간 물류가 멈춰 배들이 떠나버리면 주변항으로의 강등은 불 보듯 뻔하다. 95년 대지진이 난 일본 고베항이 그랬다.
운영사 관계자들은 "일주일간의 공백으로 부산항이 입은 상처는 속살 깊다"고 입을 모았다. 컨테이너 처리량 세계 3위를 지키는 부산항은 지금 강력한 경쟁자 중국 상하이항을 바로 등뒤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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