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총비서 서기실 길재경(사진) 부부장의 망명설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여느 인사의 망명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내포하고 있다. 외교관 출신인 길 부부장은 외무성 부부장과 당 국제부 부부장을 거쳐 90년대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총비서 서기실 부부장으로 발탁된 뒤 줄곧 김 국방위원장의 비밀자금을 모으는 '금고지기'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무엇보다도 길 부부장이 지난달 20일 5,000만 달러 상당의 헤로인 50㎏을 밀반입한 혐의로 호주당국에 나포된 북한 선박 봉수호에 승선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길 부부장이 그 동안 북한의 마약 밀수를 총지휘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증언은 향후 북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길 부부장은 이미 지난 76년 스웨덴 대사 시절 마약밀매 혐의로 스웨덴당국으로부터 국외 퇴거처분을 받은 바 있다.
길 부부장이 북한 고위 간부들에게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는 김 국방위원장의 비밀자금과 사생활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마약 외에 다른 메가톤급 정보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지난 98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정교하게 위조된 미화 3만 달러를 바꾸려다 추방된 전력도 있는 길 부부장이 정치적 망명을 택하면서 북한의 위조 달러 제작과 유통에 대해 폭로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김 국방위원장의 해외계좌에 대한 증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염기순 제1부부장의 아들인 염진철(45)씨의 망명은 그가 관련된 홍순경 전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 일가의 납치사건 실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있다.
최근 외신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보도된 남한 출신의 북한 핵 과학자 경원하 박사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상을 털어놓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경 박사의 경우를 포함, 최근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의 잇따른 망명설과 관련해 '모종의 음모'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곤경에 처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 마약, 위조지폐 등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사들의 망명설이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관련국 모두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을 택하고 있어 어느 것 하나 확인된 바 없다.
그렇지만 잇단 망명설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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