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방미 때 대미·대북 정책의 큰 물줄기를 돌리게 된 배경에는 순탄치만은 않은 준비 과정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당당한 대미 외교를 거듭 강조해왔다.취임 직후에도 무디스사가 우리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미국이 나를 흔들려 한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반기문 외교보좌관을 미국에 급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현실주의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나중에 구체화한 변화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는 미국을 잘 아는 반 보좌관과 김희상 국방보좌관의 역할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대미·대북 정책과 관련해 윤영관 외교부 장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등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의 '통일·외교·안보분과 4인방'의 역할이 일찌감치 주목됐었다. 이 가운데 윤 장관은 미국에서 공부한 지미파고 이 차장과 서 실장은 북한을 잘 아는 지북파로 통했다.
윤 장관도 장관 취임 이후 "북한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에 계속 매달려다닐 수는 없다"는 견해를 밝혀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정책 변화에 윤 장관도 역할을 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윤 장관은 특히 이라크전과 관련, 한국 대사가 유엔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도록 하기도 했다. 다만 노 대통령은 이때까지도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된 발언에 일관성이 없었던 점에 비추어 자신의 지지기반을 의식한 정치적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정책선회의 결심을 굳힌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면서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노 대통령이 방미 전에 대표적 지미파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을 주미대사에 임명한 것도 정책변화의 한 축이 됐다.
또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막후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측이 녹록치 않은 태도를 보였고, 이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회담 자체가 일그러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현실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막후 협상과정에서 크게 느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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