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문제입니다."2기 방송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1기 방송위 초대 위원장을 지낸 김정기(63·사진)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방송법 전면개정을 주장한 저서 '전환기의 방송정책'을 곧 출간한다. 그는 구 방송위 시절인 1999년 9월부터 위원장을 맡아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정책 논란으로 지난해 1월 자진사퇴하기까지 2년 4개월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방송법과 방송정책 전반의 문제점과 대안을 체계적으로 다룬 첫 연구서인 데다 방송위의 법적 지위 재정립 등 민감한 사안을 담고 있어 학계는 물론 방송계가 주목하고 있다.
기자가 연구실을 찾았을 때 김 교수는 23일 출간 예정인 책의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었다. 부위원장 선임 날치기 논란 등 2기 방송위의 파행 운영에 대한 견해부터 물었다. "참담한 심정이다. 호선이 원칙인 부위원장을 서로 '내 몫'이라고 주장하고, 일부 위원들이 빠진 상태에서 선임을 강행한 것은 국회 정쟁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김 교수는 그러나 "위원들을 비난하기 전에 잘못된 위원 선임방식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원 9명 중 6명을 국회에서 추천토록 해 방송위 구성을 '정치화'하고 결국 여야가 '나눠 먹기' 하는 현실에서 정치적 독립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실례로 "1기 때 6,7명이 집권 여당의 추천을 받아 야당이 방송위를 적으로 간주하는 바람에 국회에 출석할 때마다 방송 편파성 등 정치적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상임위원을 5명으로 늘리고 2명을 야당에 배정토록 한 개정 방송법에 대해 "방송위 파행에서 드러났듯 정치화를 심화한 개악"이라면서 "공청회는커녕 입법예고도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구 방송위처럼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3명씩 추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대법원이 이름만 빌려줬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려졌다. 대법원이 전문성 중립성을 갖춘 사람을 추천, 청와대와 국회 추천 위원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방송위의 법적 지위도 재고할 것을 주장했다. 현재 방송위는 정부조직 밖에 있는 독립 행정기구다. '정치적 독립'이라는 명분을 살리기 위한 것. 그러나 그 결과 공공기관으로서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문화관광부 등 부처와 일일이 합의 또는 협의해야 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방송위가 제·개정하는 규칙은 국민의 실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규 명령의 성격을 지녀, 대통령 국무총리, 각 부처 등에 한해 법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헌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방송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자는 것. 그는 정치적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감사원처럼 대통령 직속이지만 직무상 독립기구로 해 시행령 제정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이 이를 존중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행 방송법은 제정 당시 시일에 쫓기고 정쟁에 휘말려 졸속으로 처리한 결과, 이외에도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자문기구를 구성,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방송법과 정책 전반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책에 방송위원장 재직 시절의 실책에 대한 반성도 담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물러나 있으니 잘 보였다. 책을 내놓으면 너는 얼마나 잘했느냐, 얼굴도 두껍다는 비난도 받을 수 있어 두렵기도 하지만, 귀한 경험을 묻어두지 말고 학술적으로 다듬어 내놓는 것이 학자된 도리라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방송과 정치, 기술, 문화 등의 주제는 좀더 연구를 거쳐 9월께 후속편을 펴낼 계획"이라면서 "하루가 멀다 하게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서 졸고가 방송의 난개발을 막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