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창덕궁 앞에서 종로3가에 이르는 '걷고 싶은 거리' 돈화문길. 왕복2차로 도로 만큼이나 넓어 보이는 양쪽 인도의 가로수 밑으로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다. 보행자를 위해 마련된 쉼터공간은 주변 상가의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벤치는 상품들이 점령하고 있다. 쓰레기는 묘동 사거리에 설치된 장승모양의 거리조형물 밑에도 어김없이 쌓여있다. 불법 주·정차 단속을 알리는 플래카드에 가려진 장식물도 있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시민 보행편의와 거리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성하고 있는 특화거리가 사후 관리부실로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가 1998년부터 벌여온 걷고 싶은 거리 조성사업에 의해 단장된 거리들이 지난해 2월 시정개발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휴식공간 부족, 불법주차, 쓰레기 투기 등으로 낙제점을 받았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만들기만 하면 끝?
돈화문길에서 만난 회사원 최문기(42)씨는 "보도가 넓어지고 가로수와 벤치가 생겨 겉모양은 좋아졌다"면서도 "쓰레기더미와 아무렇게나 세워진 자전거, 오토바이, 물건들을 피해 걷다 보면 도대체 뭐가 나아졌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시비 8억원, 구비 4억여원을 들여 2001년말 조성한 연세대 앞 신촌 '명물거리'도 마찬가지. '먹자 골목'으로 유명한 이 곳 300여m 구간은 인도를 넓히고 거리무대도 만들었지만 낮에는 쓰레기에, 밤에는 차량에 점령돼 있다. 관할 서대문구의 한 관계자는 "분방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데다 밤이면 취객이 늘어나 관리가 쉽지 않다"며 "지난해에는 월드컵을 전후로 가로수가 40여 그루나 뽑히거나 부러져 800여만원의 피해가 났다"고 말했다.
관악구가 없는 살림에 7억여원이나 들여 2001년 말 조성한 신림5동 '걷고싶은 문화패션거리'는 아직 이렇다할 상권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구는 몇몇 의류상설매장을 중심으로 패션거리로 특화하려 했지만 300여m 구간엔 의류매장만큼이나 다른 업종 가게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입구에 설치된 대형 아치의 글자판 일부는 이미 1년여 전에 떨어져 나갔지만 지금까지도 방치돼 관리부실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한 상인은 "걸어서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백화점이 있고 인접한 신림역 사거리에 대형매장이 곧 개장할 예정이어서 이 거리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지 의문"이라며 "이곳을 패션거리로 특화하려한 구의 계획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거리에 뿌려진 혈세들
특색 있는 거리, 걷기 편한 거리를 만드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투입된다. 서울시는 96년부터 지금까지 역사·문화탐방로, 걷고 싶은 거리, 차 없는 거리, 녹화거리조성사업 등 8개 사업군 208개 사업을 벌여왔다. 이중 400여억원이 들어간 역사·문화탐방로와 걷고 싶은 거리, 차 없는 거리 조성사업은 지난해말 완료됐고, 310억여원이 들어간 북촌한옥마을 탐방로, 녹화거리 조성, 보차도보행환경개선사업은 대부분 올해 말 마무리된다.
시비 710억여원 외에 자치구 예산까지 감안하면 총사업비는 1,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시 관계자는 "거리조성사업은 대부분 자치구의 신청을 받아 시가 자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며 사후 관리는 자치구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시설유지보수나 관리인력 투입에 드는 비용 등이 자치구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시와 자치구가 사업의 지속성,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기적인 사후관리 방안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김은희 사무국장은 "다양한 거리조성사업이 도시보행환경을 개선한 긍정적 측면은 분명히 있다"며 "하지만 일단 시공이 끝나면 행정이 발을 빼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계획단계에서부터 주민을 참여시켜 사후관리를 주민과 행정이 함께 하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동국기자d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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